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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원고] 박정희 前 대통령의 지도자적 고민
07/09/03 21:09 | 청소년미래재단 | 조회 2549 | 댓글 0

박정희 前 대통령의 지도자적 고민

                류태영 (건대 명예교수, 대산농촌문화재단 이사장)



필자는 1972년 3월초,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의 상담요청 전화를 받고 청와대에 들어가 여러 비서관들과 함께 우리나라 농촌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5시간동안 나눈 것이 계기가 되어 청와대에서 초창기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는 기획과 추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뒤 얼마 안 되어 대통령께 건의하기를 측근에 있는 사람(비서관, 행정관, 경호관)들이 맨 먼저 새마을 운동에 관한 정책배경과 대통령의 뜻을 이해하고 솔선수범을 하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삼일 후 대통령의 특명으로 청와대의 모든 특별 보좌관, 수석 비서관, 행정관, 경호실 간부들 250여명이 지하 대강당에 모여 3시간 동안 새마을 운동 교육을 받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새 국정지표의 하나인 새마을 운동에 관한 정책기조와 정책방향 그리고 계획된 사업내용, 추진 방법 등을 발표 하는데 필자가 주강사로 등단하여 90분 동안 덴마크와 이스라엘의 사례  그리고 한국농촌의 현실과 비교하여 열정적인 강의와 주장을 힘차게 역설 한 일이 있었다. 즉 새마을운동은 대통령측근 인사들로부터 시작하여 방방곡곡에 확산 하도록 한 것이다.


그 날 저녁 오후 6시, 영부인 초청으로 본관에 올라가서 대통령가족들을 만났고 밤 11시 가 넘도록 장시간동안 대통령 내외분과 함께 단독으로 대화를 한 것이 일생동안 잊을 수 가 없다. 대통령은 밤늦도록 피곤 한 줄도 모르고 나라의 발전과 농촌 농민들을 진심으로 걱정 하며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 농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잘 잘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선진국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데 한도 끝도 없었었다.



필자는 이때 처음으로, 그의 인간성과 지도자적 자질, 그리고 국가지도자로써의 집념과 그의 가장 큰 고민이 오직 국가발전과 낙후된 농촌개발 그리고 농민들의 문화 복지를 달성 하고자 하였으며 그 해결책을 골돌히 생각 하고 노심초사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정희 前대통령은 60년대 집권 하자마자 국가 경제발전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국가경제개발계획을 담당하는 부처로 경제기획원을 신설하며 정책의 최 우선부처로 삼고 우수 인재를 배치하여 제 1.2.3차 5개년 장기경제개발계획을 세워 강력하게 추진 해 왔던 것이다.


민족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재가 없는 나라로써는 해외의 기술 자본 등을 도입하여 보세가공 산업으로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미숙련된 인력을 깞싸게 보급하여 투자자들이 재미를 보게 한 후 그 기술을 우리에게 전수 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울산, 포항, 마산, 구미, 인천 등 전국 몇 개 해안지역을 선정, 공업단지로 조성, 개발육성하며 해외에서 도입한 우수기술과 자본으로 산업발전에 기여 해 왔던 것이다. 이때부터 더욱 자신을 가지고 멀고 먼 앞날의 한국 산업발전을 생각하며 미국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국가기본산업인 제철, 자동차, 석유 화학 등을 중점적으로 개발하여 공업발전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게 되었다. 이 무렵 역사상 많은 다목적 수력 땜을 건설 하여 수력발전을 통하여 무공해 에너지를 얻고 농업용수 고업용수문제, 홍수 예방문제 등을 해결 해 나가기도 하였다.


70년대 초, 어느 해 전국적으로 50년 만에 대 한발을 만나게 되었고 농업생산구조가 무너지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농민들의 신음소리와 못살겠다는 비명소리가 드높아 갔었다. 이때 대통령은 농촌문제를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였고 때맞추어 필자가 가난과 역경을 딛고 세계적 복지농업국가로 성공한 덴마크와 이스라엘에서 그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하고 돌아와 농촌운동을 하다가 박정희 前대통령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하고야 만다.  근면자조 협동정신으로 잘 살아보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도우신다. 새벽종이 울린다,

새아침이 밝았다. 너도나도 알어나 새 나라를 세우자................... 

좋아졌네 좋아졌어, 이리보아도 좋아졌고 저리보아도 좋아졌네...................

많은 구호와 노래와 시를 쏟아내며 온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경제발전과 사회통합에 전적으로 온 국토를 뜨끈 뜨끈한 열구덩이로 만드는데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갔던 일이 엊그제 같이 선명하다.



초가집을 개량하여 기왓장이 지붕에 올라가고 마을안길을 넓혀 자동차가 드나들고 소득증대사업을 개발하여 생활개선 문화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사흘이 멀다하게 농촌현장에 가서 농민지도자와 농민들을 만나 격려 하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협동을 일 깨워 주었다. 자나 깨나, 국무회의나 고위공무원의 모임에서 직접 챙기고 격려 하고 다녔다.


1972년 가을 광주에서 개최 된 전국 지방장관 확대회의를 개최 했을 때의 일이다. 관련부처장관, 도지사, 시장, 군수등 1,000여명이 광주 체육관에 모였을 때,  새마을운동 초창기에 청와대 지하 강당에서 필자가 한 연설이 대통령가족들 앞에서 했고 대통령주재 국무회의 때 전 각료에게  했던 내용을 다시 전납 광주 체육관에서  개최 된 회의에서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대통령이 3번 들었던 내용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 하여  다른 고위 공직자들이 이석을 하지 못하게 배려했던 일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국가지도자로 이토록 철두철미하게 농촌과 농민을 생각 하고 고민하며 국가경제발전에 낙후된 계층을 배려 한다는 것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겨 기리어 지고 있다.


본 기념사업회 유양수 회장은 당시 주 베트남 한국대사로 근무중 일시 귀국 했을 때 대통령의 직접지시로 필자가 모시고 경기도 새마을시범부락을 안내하며 새마을운동의 현황을 설명 드렸었다. 이때 대통령은 유대사님을 얼마나 애끼고 사랑 하였는지 각별히 자세한 지시를  했던 일이 새롭다.


* 최종수정일 : <script>getDateFormat('20060811183637' , 'xxxx.xx.xx ');</script> 2006.08.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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