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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독후감자료

도산 안창호 - 미림여정고 김희옥
16/09/28 14:18 | 오예지 | 조회 3680 | 댓글 0

도산 안창호

 

()농촌청소년미래재단 14

미림여자정보고등학교

2학년 김희옥

 

이번 연수 때에는 도상 안창호라는 책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 한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최근에 역사적 이슈가 종종 뉴스에 보이고 역사적 내용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들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실들이 궁금해졌고 그 사실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역사에 계속해서 관심이 가다보니깐 2학기 8교시 방과후로 한국사를 선택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 여름 방학에 많은 과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책을 읽었다. 책을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읽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78년 안창호 선생은 평안남도 강서군 도롱섬에서 안흥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어린 시절 말성 꾸러기였던 안창호 선생은 청년 연사로 활동해 백성들의 마음을 울리게 하였다. 그러던 도중 1894년 동학 농민 운동과 청.일 전쟁을 보고 들으며 신학문을 배울 것을 결심하셨다. 1897년에는 19세의 나이로 독립 협회에 가입하셔서 평양 쾌재정 연설을 하셨으며 1898년에는 이승만, 윤치호, 이상재 등과 함께 만민 공동회를 개최 하셨다. 190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항인 친목 단체를 발전시킨 공립협회를 결성 하였으며 기관지인 공립 신보를 발행하셨다. 1907년 을사조약이 채결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와 구국운동을 전개 하셨으며 이갑, 양기탁, 신채호 등 과 함께 비밀 결사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했다. 1910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으로 경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시다 풀려나셨다. 1912년에는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를 조직했으며 이듬해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6개월 복역하시고 병보석으로 풀려나셨다. 193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은 서울 대학 부속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다시 도산 안창호 선생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정말로 한사람이 하기 에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3번이나 고문을 받으면서까지 그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을 봤을 때는 정말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이런 안창호 선생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지금까지 생활을 쭉 되돌아서 생각해보았다. 안창호 선생의 삶은 정말 가치 있는 삶이라고 느꼈다.

이 책은 안창호선생님의 일생과 비평 등이 담겨있다. 이 책에서 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은 '귤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도 나라를 위한 것이다.' 라는 구절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 마인드는 굉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가면 갈 수 록 개인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바뀌고 있고 흔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본인이 하는 행동이 나를 위한 것이지 나라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하는 사람은 많이 없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책에서 또 다른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앞으로 나만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배려를 하면서 절대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교훈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안창호선생님의 지적인 미를 더불어, 인간적인미도 살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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