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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독후감자료

'도산 안창호' - 혜화여고 1학년 함혜원
14/09/29 11:22 | 오예지 | 조회 4316 | 댓글 0

도산안창호

혜화여고 1학년 함혜원

(줄거리)

호는 도산. 평안남도 강서에서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안창호는 어려서 고향의 사숙에서 공부했는데, 그 천성의 영민함이 이미 드러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도산이 17세 되던 해에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도산은 왜 일본과 청나라가 우리 국토에 군대를 끌고 와 전쟁을 하게 되었나 생각하였다. 도산은 같이 공부하던 필대은과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했다. 그리하여 결론을 내린 것이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여 1895년 상경하여 언더우드가 세운 구세학당에 들어갔다. 1897년 도산은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만민공동회를 쾌재정에서 개최하여 대중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도산은 유학을 목적으로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그곳에 사는 동포들의 실태를 보고 공부의 목적은 버리고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 문명한 국민다운 생활을 하도록 해서 한국인은 문명한 민족이다, 독립국가를 경영할 만한 실력과 소질도 있는 국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리게 노력하리라고 결심하였다. 도산은 소제 인부가 되어서 동포의 숙소를 청결히 하였고, 여러 도시에 흩어져있는 한국인들을 모아 대한인국민회를 형성하였다. 그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하였고 다음해 이갑, 양기탁, 신채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였고,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를 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학교와 대구의 태극서관을 세워 민족의 지도자 양성과 서적을 발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1909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때문에 1910년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개성헌병대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풀러났고 망명을 결심한 도산은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105인사건으로 신민회가 해체되자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각 부 총장을 맡고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그러나 1921년 정부 내에 분열이 일어나 이를 수습할려고 했으나 결국 수습하지 못하고 북경으로 갔다. 도산은 만주지역내의 중요한 독립운동자와 국내에서도 몇사람 오게 해서 한자리에 모여서 독립운동의 금후 방침을 토의하기 위해 길림으로 갔다. 그러나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에 중국 경관과 일본 경관이 나타나 회의장을 포위하고 도산과 모든 사람들을 포박하여 구금하였다.

일본 영사관이 이것을 공산당의 집회라고 중국 관헌에게 말했던 것이었다. 도산의 신분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어 일본 관헌에게 넘겨지지는 않고 20일간 유치되었다가 석방되었다. 도산이 오래 떠나있는동안 흥사단의 사기가 저상하여 도산은 미국으로 가 흥사단을 강화하였다. 도산은 대독립당과 이상촌 그리고 흥사단 원동 지부의 발전계획과 수만금의 출자를 안고 상해로 돌아왔으나 일본의 세력이 중국에도 뻗어지면서 계획을 풀 기회가 없었다. 1932년 의사 윤봉길이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본 최고사령관과 대장들을 폭살하는 사건이 생기자 일본경찰에게 체포되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도산은 4년의 형을 받았으나 상소권을 포기하였다.

도산은 소화불량으로 몸이 쇠약한데다가 폐환이 급성으로 진행돼 경성대학 병원에서 보석이 되어 별세하였다.

느낀 점

지금 내 나이 때부터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안창호 선생님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 역사는 외세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았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사이에 껴있다보니 침략을 자주 받았고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그런 역사를 보며 난 많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님 같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저 시대에 살았더라면 안창호 선생님처럼 조국독립을 위해 평생을 살것인가... 솔직히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행동으로는 실천을 못할 거 같다. 그러나 안창호 선생님도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보단 조국독립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더 컸기에 일생을 조국독립에 바쳤을 것이다. 나도 그런 안창호 선생님의 마음을 본받을 것이다.

내 생활양식의 변화

어제가 광복절이었다. 평소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광복절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집앞에 걸린 태극기를 보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했다. 안창호 선생님을 비롯한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등등...

그 분들을 생각하며 나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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