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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원고

<뿌리 의식 심어주는 유태인의 입양>삶의 지혜 이야기(23)
07/09/03 21:30 | 청소년미래재단 | 조회 3151 | 댓글 0

<뿌리 의식 심어주는 유태인의 입양>류태영 박사의 삶의 지혜 이야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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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이후 우리에게는 눈에 띄게 고아들이 사회에 문제화 되어 왔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전흔이 엷어진 오늘에도 고아들은 여전히 늘어만 가고 있다.

이스라엘에 거주할 때 딸아이를 데리고 예루살렘의 한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간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처럼 보는 동양인이라서인지 여기저기서 우리를 보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검은 눈에 검은 머리를 한 우리가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소란 속에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하나 더 있다, 하나 더 있어!” “그래 정말 똑 같이 생겼는데...”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단발머리의 동양아이가 있었다. 난 그 아이가 설마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원칙적으로 유태인이 아닌 외국인의 입양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아이는 이스라엘의 유태인 가정에 입양된 몇 안 되는 한국의 고아 중 최초의 아이였다. 딸아이와는 한 학교에 다니고, 같은 반이어서 우리는 매우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양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초현실파 화가였는데, 프랑스에 머물 때 양녀로 입양해 기르게 되었다고 했다. 부유한 가정에 입양된 아이는 양부모가 자식이 없어서인지 무척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50여 평 연립주택에서, 높은 문화생활 속에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주말이면 양부모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기도 하고, 피아노 등 특기교육도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는 아이의 양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 가정에서는 왜 입양을 꺼리는 겁니까?”
그 목소리에는 분명히 분노가 스며 있었다.

그들은 타지에서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의 민족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그들이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한시도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고아들을 무차별 해외 입양시키는 우리 입장을 이해할 리 없었다.

“그동안은 너무 가난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깊이 박혀 있는 뿌리의식이 문제입니다.” “뿌리의식은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바람직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나서 만난 것이 여호수아라 불리는 여섯 살 된 사내아이였다. 당시 나는 브엘쉐바의 벤구리온 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농촌사회학과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거리에서 우연히 동양 아이를 만나 말을 걸어보니 한국 아이였다. 그 아이는 유서 깊은 유태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우물이 있는 브웰쉐바의 교외에서 포도원을 경영하는 농부의 집에 입양되어 있었다.

그 아이의 본명은 유문수라고 하였다. 그 가정은 재혼을 한 부부였다. 양편이 아이 둘씩을 데리고 만난 사이로 복잡한 가정이었다. 그 아이는 피아니스트인, 이태리계 유태인 부인이 입양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가정은 각자의 딸 둘씩과 양자 하나로 이루어진 가족이었다.

“딸 넷만 해도 벅찰 텐데, 또 한명을 입양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은 수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을 떠올리면 어느 민족이든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것을 쉽게 그냥 넘겨버리지는 않겠지요. 그것이 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잊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양부모는 아이에게 한국과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다며 한국 유학생을 소개시켜 달라고까지 하였다. 아이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쳐 한국의 얼을 넣어주어 아이가 성인이 된 뒤, 한국에서 살기를 원하면 한국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대학은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겠다고 했다. 차분히 그 아이와 장래 이야기를 하는 그 부모에게서 인간의 뜨거운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일찍이 유태인들은 독일군에게 대량 학살을 당할 때에도 죽은 부모대신 아이를 번갈아 키우며 아이에게 유태인의 혼을 불어 넣는 교육을 시켰다.

“사람은 당연히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야지요.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수 천 년을 떠돌던 그 고난의 시절을….”

자기가 낳지 않은 자녀를 친자식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외국에서 입양한 아이는 여러 가지로 더 많은 문제가 따르게 된다. 어떤 아이는 피부를 비롯한 신체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런 아이를 입양한 부모는 부모대로 더욱 세심한 배려를 필요로 한다.

이제 우리의 문화수준도 무척 향상됐다. 우리나라도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미래 꿈나무인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은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다.


글_류태영 박사(히브리대학 사회학박사, 건국대 부총장 역임, 농촌·청소년 미래재단 이사장)


(2006.12.23.경기복지뉴스)

 
 
 
  * 최종수정일 : <script>getDateFormat('20070808155340' , 'xxxx.xx.xx ');</script> 2007.08.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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