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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원고

<공부 잘하는 친구? 청소 잘하는 친구?>삶의 지혜이야기(26)
07/09/03 21:39 | 청소년미래재단 | 조회 3857 | 댓글 0
<공부 잘하는 친구? 청소 잘하는 친구?>류태영 박사의 삶의 지혜이야기(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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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이국에서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아이들이 소외받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아이들에게 이스라엘 아이들과 친구들 만들어 주기로 작정하였다. 8밀리 컬러 영사기와 월트 디즈니가 만든 만화영화 ‘신데렐라’와 ‘로빈 훗’ 그리고 ‘뽀빠이’ 등 5편을 사와서 딸아이에게 말했다.

“너 이번 주말에 친구들을 초대하거라.”
“왜요?”
“네 친구들에게 만화영화도 보여주고 아빠가 동화도 들려주고 그리고 음…그래! 맛있는 것도 해 줄게.”
“몇 명이나요?”
“글쎄, 우리집 공간으로 봐서 여덟명 정도가 좋겠다. 그리고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골라서 불러오는 거야, 알았지?”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친구 삼아 주면 좋을 것 같아 무심코 한 말이었다.
“저 아빠…. 오글리는 공부는 좀 못하지만 친절하고 성실해요. 그리고 나한테 잘해 주는데 그 친구도 불러도 되나요? 그리고 에스더는 공부는 그저 그렇지만 칠판도 혼자 다 지우고 청소도 가장 열심히 하는데….”
아이는 내가 ‘공부 잘하는 아이’라고 한 말이 무척 마음에 걸렸던지 수줍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꼬리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같이 어울리는 아이 중에 공부 잘하는 아이는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애야 너는 공부 잘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냐?”
내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에 대해서 당황하였고 아이도 애교에서 꼬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 “아빠가 그냥 해 본 말이다. 마음 놓고 친구들을 초대해라.”라고 말했다.
아이는 다시 기가 살아서 동생 손을 잡고 쪼르르 친구들을 초청하러 나갔다. 주말이 되자 초청된 아이들이 왔다. 약속한 대로 영화도 보여 주고 이야기고 해 주고 전래 동화를 들려 주자 흥미로움에 눈동자를 움직일 줄 몰랐다.

‘콩쥐와 팥쥐’, ‘선녀와 나무꾼’, ‘호랑이와 효녀’와 같은 이야기는 이국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신비로운 모양이었다. 이 소문으로 유치원에서 ‘일일 교사’를 해 달라는 부탁이 왔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거절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도 들려주고 ‘모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한번 그려 보세요.”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의아스러워 나오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쓱쓱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어떤 아이는 모세보다도 지팡이를 두 배 정도 크게 그렸는가 하면 도화지 전체를 한 곳도 빠짐없이 온통 파란 색깔로 물들여 놓은 아이도 있었다.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모세가 기적을 이룬 그 바다가 가장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는데 그림 그리기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신화적 상상력과 사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훈련을 함으로써 창의력을 길러주는 한편 구체화되지 않는 사상이나 생각을 더 심화시키고 구체화시키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다.

한 학부모 집을 방문 했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막 돌아온 아이가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엄마, 헤지는 오늘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 아이의 엄마는 “그래 친구가 참 좋겠구나, 너는 청소를 잘하지?”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의 누나가 “엄마 오늘 학교에서 에스더는 피아노를 잘 쳐서 박수를 받았어요.”
“그래 너는 하모니카를 잘 불잖아.”
그러자 그는 얼른 하모니카를 가지고 나와 열심히 불었다.

남의 자녀가 잘하는 것을 자신의 자녀도 잘해야 되고 남이 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잘해야 된다는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달리 자신의 자녀의 장점을 들어서 칭찬해 주는 어머니의 교육관에 놀라면서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류태영 박사_히브리대학 사회학박사/ 건국대 부총장 역임/ 농촌, 청소년 미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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