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하는 날을 만들어 보자>류태영 박사의 유대인의 교육 이야기(31) | ||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가족이 분담하여 집안일을 한다. 거기에는 그들만의 공동체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런 점이 내게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나도 이스라엘에서는 가끔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곤 했다. 귀국 후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것저것 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밥을 안 먹은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간편한 빵이나 스프에 더 길들여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야 어디 그런가. 밥을 먹어도 찰진 우리 쌀로 지은 걸 먹고 싶고, 국을 먹어도 구수한 된장국을 먹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돌아가며 먹는 것이었다. 하루는 빵과 스프를 먹었으면 그 다음날은 밥을 먹는 식으로. 그러나 식탁에 앉아있는 아이들 표정을 보면 영락없이 도살장에 끌려온 소나 다름없었다. “엄마, 난 다른 걸로 주세요.” 큰 아이는 약속한 게 있으니 말을 못하는데 작은아이는 항상 투정이었다. “너, 아버지하고 약속했었지? 약속을 안지키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게 타일러서 억지로 숟가락을 뜨게 하자 아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먹는 시늉만 내다 끝내는 더 이상 못 먹겠는 지 자리를 뜨고 만다. 기회는 이 때다 하고 큰 아이가 물어왔다. “아빠, 왜 꼭 밥을 먹어야하는 거예요?” “그럼, 너는 어느 민족이지?” “한민족이요, 그거하고 밥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그러면 너 토끼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아니?” “그야, 풀을 먹고 살잖아요.” “그렇지, 토끼가 고기 먹는 것을 보지 못했지? 그럼 미국에 사는 토끼는 다른 것을 먹고 살겠니?” “....” “거봐라, 토끼는 풀을 먹어야 토끼가 되는 거예요. 토끼가 고기를 먹는다거나 다른 것을 먹으면 토끼가 아닌거야. 그렇게 우리 민족도 몇 천년을 밥을 먹으며 살아온 거란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왜 하필이면 밥을 먹는거지? 더 맛있는 것도 많은데….” “그래, 아빠도 왜 우리 민족이 밥을 먹어 왔는지 잘 몰라. 하지만 그 곳에 우리의 혼이 있고 문화가 있는데 어쩌겠니, 조금만 참고 먹어 보아라. 그러면 곧 익숙해질 테니.” 본격적인 문제는 개학을 하고 한 달쯤 뒤에 일어났다. 막내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면담요청이 온 것이다. “아이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도통 책 읽을 줄 몰라요. 한글을 아직 못 깨우친 건가요?” 아니 이런 당연한 말을 하려고 바쁜 사람을 부르다니…. 이제 1학년 2학기 초에 아이가 이스라엘에서 공부를 하다 왔으니 모르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대답이 없자 선생님이 다시 설명했다.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지금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는 한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모두가 유치원이나 가정에서 한글을 깨우치고 오기 때문에 가르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러니 한 아이를 위해서 다른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도 없고 어쩌시겠어요?” “어쩌면 좋겠습니까?” “학교에서 매주 시험을 보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90점 이상 받는데 댁의 아이는 0점, 기껏해야 20점 정도 받거든요. 그러니 집에서 아이를 개인적으로 좀 지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부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곧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집에서 가르치자니 이스라엘 교육관에 익숙해 있는 내 의식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유치원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집에서 가르쳐 보겠다는 말로 결론을 내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에게 ‘가 나 다 라’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 대신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을 좀 더 늘렸다. 선생님도 포기했는지 그 후로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도 겨울방학에 이르자 아이는 한글을 거뜬히 알게 되었다. 거기에다 다른 애들보다 상상력이 뛰어났다. 그만큼 동화 속의 사람들과 환경들을 더 많이 만났을 테니까. 귀국 후 생활이 안정권에 접어들자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럴수록 뭔가 자꾸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다가도 친구를 만날 때에도 그런 느낌은 수시로 엄습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모두들 집에 있었지만 예전 같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디를 가든 항상 가족 동반을 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고 누구나 혼자였다. 그러니 친구도 제대로 없는 아이들은 방구석에서 뒹구는 것이 놀이였고 일이었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가족의 날’이었다. 우리처럼 가족공동체적 생활이 없는 나라에서는 이런 날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가족의 날’이라고 거창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1주일에 하루를 할애 하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낸 시간들을 합쳐 온 가족이 함께 어울리면 되는 것이다. 온 가족을 모아놓고 매주 토요일을 ‘가족의 날’로 선포하자. 아이들은 물론 아내까지도 입이 벌어졌다. “아빠, 그렇게 모여서 무얼 하는 건데?” “글쎄다.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응, 엄마 아빠랑 같이 공놀이 하고 싶어.” “응,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어.” “그래, 그렇다면 가야지. 그러나 오늘은 아니고 돌아오는 토요일부터니까 우리 순서를 정하자. 그렇게 해서 차례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거야. 어때 좋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제비뽑기로 순서를 정했다. 하루는 온종일 공놀이를 하기도 하고 또 하루는 박물관에도 가고, 좀 여유로울 때는 1박 2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공동의 일을 다시 찾은 덕분이었다. 이렇게 가족의 날을 만들고 가족이 함께 하다보니 아이들의 정서도 안정이 되고 학업도 향상이 되었고 가족애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생겼다. 류태영_히브리대학 사회학박사/ 건국대 부총장 역임/ 농촌·청소년 미래재단 이사장 2007/07/28 경기복지뉴스 |
수필원고
<가족이 함께 하는 날을 만들어 보자>유대인의 교육 이야기(31)
07/10/22 11:22 |
이명희 |
조회 37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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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