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You ar here   :  HOME > 설립자 류태영> 수필원고

수필원고

<언어보다 중요한 조국애> 삶의 지혜 이야기[27]
07/09/03 21:34 | 청소년미래재단 | 조회 3582 | 댓글 0

<언어보다 중요한 조국애>류태영 박사의 삶의 지혜 이야기[27]

사진.jpg이스라엘에서 생홀아비 생활을 한 지 9개월쯤 되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자다가도 퍼뜩들기 시작했다. 타국에서의 외로움보다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랄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생각 끝에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한달쯤 지나자 이국에 대한 설레임을 안고 아내와 아이들이 도착했다. 아이들은 낯선 환경과 음식, 언어에 대해 우려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아주 쉽게 적응했다. 가족이 도착한 이튿날 이웃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다.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어울리게 되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방을 엿보았다.

“그 인형, 참 예쁘구나, 나도 한번 만져보자.” 이웃집 아이가 말했다. 물론 히브리어로 그러자 이제 갓 여섯살난 큰 아이가 아내가 직접 만들어 준 토끼인형을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싫어 이건 우리 엄마가 만들어 주신 거란 말이야.” 물론 한국말이었다. “그래도 한번만 보자” “좋아 그럼 잠깐만이야.” 아이는 마지못해 인형을 건내 주었다. 물론 바디랭귀지를 곁들인 표현들이었다. 일주일 후 아이를 유치원에 입학시켰다. 말이라도 좀 트인 다음에 보내자는 아내의 말처럼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언어는 직접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라는 평상시 내 주장대로 입학을 시키고 매일 끝나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유심히 아이를 지켜보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이는 동그란 탁자에 턱을 고인체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낯선 히브리어가 들리지도 입에 담아지지도 않을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잘못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아이가 심한 우울증이나 심지어 자폐증에 걸릴 것 같아 물어 보았다. “유치원이 마음에 안들어?” “아뇨 마음에 드는데… 유치원 갈래요.”

그렇게 열흘쯤 지나자 드디어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입이 트인 아이는 두달이 지나자 오히려 한국말보다 히브리어를 더 잘했다. 부모하고 대화하는 시간보다는 아무래도 유치원이나 이웃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은 아이에게는 그만큼 히브리어를 습득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는 세 살 난 동생을 붙잡고 히브리어로 떠들어댔다. 막내 아이는 누나 덕에 엉겹결에 히브리어를 배우게 된 셈이다. 아이들이 이스라엘에 눌러 산다해도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한국말을 알아야하는 것인데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우리에게는 더더구나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가족회의를 열어 집에서 가족끼리 대화할 때는 히브리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웃지못할 일이 종종 벌어졌다. 하루는 막내 아이가 허리춤을 움켜쥐고 급하게 소리쳤다.

“아빠 여기 똥 있어, 똥 있어!” 나는 아이가 어디에다 똥을 싸놓았나 싶어 이곳저곳을 살펴 보았지만 똥은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아, 어디에 똥이 있단말야?”
“아빠 여기 똥 있단 말이야!”
아이는 그래도 굽히지 않고 연신 자기주장을 해댔다. 한참 후에야 그 뜻을 알아낸 나는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에쉬리 칵키!’ 똥 마렵다는 뜻인데 우리말로 직역하면 ‘여기 똥있다’란 뜻이다. 그래서 한국어 교과서를 구입하여 아내는 뜻하지도 않게 이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노릇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정규과목으로 외국어를 가르친다. 영어는 기본이고 이스라엘의 지역 특성상 아랍인에게는 히브리어를 유태인에게는 아랍어를 추가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외국어 교육법이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처음부터 ABC는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처음 1년간을 교과서나 노트도 없이 영어권 출신의 선생님으로부터 순전히 영어로만 수업을 받게 된다. 1년 지난 후에야 교과서를 통해서 ABC가 아니라 단어나 문장을 곧바로 배운다. 나도 서른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히브리어 어학교습을 받았다. 첫 시간이 되자 여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한 마디도 영어없이 히브리어를 히브리어로 가르쳤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자 첫 날 여선생님이 말한 그 뜻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선생이고 너희들은 히브리어를 배우는 학생이다.’ 세상에 이 몇 마디를 가지고 세 시간을 떠들어댔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국에 살지 못하고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들도 히브리어 보다는 영어나 그밖의 그 지역 언어에 익숙해져 있다. 아예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민족이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로 있게 한 것은 오직 그들의 종교와 교육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매일밤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습과 설화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리고 시가(詩歌)속에 스며들어있는 애환들을 이렇게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을 끊임없이 구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면서도 그 지역 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유태민족문화를 창출하여 전승해 온 힘의 원천인 것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오늘밤부터라도 잠자리에 드는 아이의 귓가에 조국의 이야기를 속삭여 주자.


2007/3/31 경기복지뉴스
* 최종수정일 : <script>getDateFormat('20070808151930' , 'xxxx.xx.xx ');</script> 2007.08.08 <15:19>

댓글 0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답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