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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원고

<교육의 근본은 효> 삶의 지혜 이야기(29) )
07/09/03 21:38 | 청소년미래재단 | 조회 3025 | 댓글 0
류태영 박사의 삶의 지혜 이야기(29)

<교육의 근본은 孝>
류태영 박사의 삶의 지혜 이야기(29)

종종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못 볼 것을 많이 보게 된다. 노인이 자기 앞에 서기만 하면 잠들어 버리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이 세상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필 왜 자기 앞에 서서 민망스럽게 하느냐는 듯 노려보는 젊은이도 있다. 반면, 노인들은 처음부터 자리 같은 것은 포기하고 출입문 쪽 구석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기어코 자리에 앉아야겠다는 듯 그 혼잡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양보할 만한 젊은이 잎에 서서 눈치를 보는 노인도 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여보게, 자리 좀 양보하지 그러나?” 노인의 말에 젊은이가 곧 양보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젊은이의 입에서는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무슨 말씀이세요? 노약자 지정석은 괜히 만들어 놓았습니까? 불편하시면 그리 가면 될 것 아닙니까? 나, 원 참” 아주 손쉽게 결판이 났다. 나만 망신이라고 생각했는지 노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젊은이만 노려보고 있는데 옆 사람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여 사건은 끝났다. 노약자 지정석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학생처럼 보이는 한 아가씨가 그 노약자 지정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한 노인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인지 그 학생 앞에 섰다. 그러나 말이 떨어지지 않는 지 한참 학생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후 노인의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야, 이년아 너는 어른도 눈에 안보이냐? 어디 어른 앞에서 감히 다리를 꼬고 앉아, 당장 내리지 못해?”
내 귀를 의심도 했지만 분명히 욕설은 정장까지 한 노인의 입에서 튀어 나오고 있었다.
차 안엔 갑자기 긴장이 감돌았고 모든 시선이 그 학생에게로 향했다. 학생은 너무 황당했는 지 다리를 내릴 생각도 않고 눈만 똥그래져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이 년이…. 어서 못 내려! 너 어느 학교 다니냐? 그러면서도 네 년이 학생이냐? 못된 년 같으니라구.” 갈수록 노인의 입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 학생도 지지 않았다.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댁이 뭔데 이래요? 그럴 기운 있으면 댁의 딸한테나 그러세요. 어디다 마구 욕설이예요. 누가 늙으라고 그랬어요?” “뭐라구? 그래도 이년이 입은 있다구…. 어디다 함부로 나불대는 거야, 엉?” 상황은 점점 험악해 갔다. 노인은 폭력까지 행사할 태세였다. 그러자 주위에서 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노인을 만류했다. 그리고는 학생을 달래어 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 후에도 노인의 욕설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요즈음 어른들이 아이들을 꾸짖을 때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본디 우리사회는 대가족 사회요, 공동체 사회였다. 바쁜 농사철이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품앗이를 했고 어른이 길을 갈 때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고개를 숙이고 길을 비켜 드렸다. 어른들은 불량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자기자식처럼 꾸짖고 타일렀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자. 경제수준이 우리나라의 몇 배나 되는데도 이스라엘에서는 여전히 어른들을 공경한다. 노인이 버스를 타면 반드시 자리를 양보한다. 눈치라도 보고 앉아있으면 워낙 간섭하기 좋아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온갖 꾸지람과 눈총을 받아야한다. 물론 이스라엘에서는 노약자 지정석도 경로석도 없다. 그러나 모두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예의도 극진하다.
그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토대는 아무래도 성경의 ‘십계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십계명의 처음 네 계율은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인간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 되어 있다. 바로 그 다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규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서 언급되는 것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철저하게 율법에 따라 행동하는 유태인들에게 이것이 미친 영향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통해 교육을 받는다. 일상생활의 자연스런 대화도 많은 부분이 종교적인 예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라든가 왜 신이 모세에게 계시를 내렸는가 등의 예화를 들려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도덕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온몸을 통해 대화로 가르친다. 아이들은 자연히 부모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 굳이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부모는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나에게 받은 게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돌려 줄 생각을 말고 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라.”
한번은 한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왜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거니?” “예, 저를 위해 합니다.” “너를 위해서 한다니, 그게 무슨 뜻이니?”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효도하면 땅에서 복을 받고 장수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효도라고 했잖아요. 눈에 보이는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교육의 敎(교)자도 孝(효)자로 시작된다. 아마도 효도가 모든 교육의 근본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류태영_히브리대학 사회학박사/ 건국대 부총장 역임/ 농촌·청소년 미래재단 이사장
* 최종수정일 : <script>getDateFormat('20070808151718' , 'xxxx.xx.xx ');</script> 2007.08.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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