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아이를 설득해야 _류태영 박사의 유대인의 교육 이야기(33) | ||
대화로 아이를 설득해야 어느 날 우리부부는 무척 당혹스런 뉴스를 들었다. 스승과 제자간의 법정소송, 엄격히 말해서 스승과 학부모간의 바람직하지 못한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선생님은 시험성적 결과에 따라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했다. 그것은 매질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쓰러졌고 선생님은 서둘러 아이를 병원으로 후송했다. 선생님은 아이의 부모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치료비도 부담했다. 아무 일도 없이 며칠이 흘러갔다.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번져갔다. 아이의 허리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그 아이가 매질을 당하기 며칠 전 철봉에 거꾸로 매달렸다가 떨어져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는 증언을 했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로부터 목격자 진술서를 만들어 다친 아이의 부모에게 제시했다. 부모는 선생님이 책임을 회피한다 하여 괘씸하게 생각했다. 선생님이 업무상 과실을 했다며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갔다. 결과는 아이들의 목격자 진술을 첨부한 선생님의 승리였다. 교육의 목적상 가벼운 체벌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는 승복하지 않고 아이가 매질을 당하기 전에 한 번도 아프다고 한 일이 없었다며 아이가 철봉에 매달린 적이 없었다는 또 다른 아이들의 진술서를 받아 2심에 항소를 했다. 2심에서는 매질을 한 회초리가 문제가 되었다. 가는 부분을 손에 쥐고 굵은 부분으로 때렸다는 것이었다. 교육의 목적상 꼭 필요한 체벌을 가했느냐는 것이 쟁점이었다. 1심과는 달리 유죄가 선고되었고 3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갈렸다. 어쨌든 체벌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 매질을 해서라도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 등….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 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체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선진국이며 문명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들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까지 엄격하게 체벌을 금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명령과 복종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아이를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으로 체벌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대화와 자율로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결코 체벌이 필요치 않다. 바람직한 교육방법은 대화와 자율로 흘러가고 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러한 방법론의 하나로 이스라엘 교육을 생각해 왔고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믿어왔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은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수천 년을 외부의 적과 싸워온 그들에게서 겉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총을 들고 길거리에 늘어선 젊은이들과 어디서나 팽배해 있는 긴장감이다. 그러나 그들의 내부에 조금만 들어가면 그러한 환상은 금세 깨지고 만다. 그들에게서 명령과 강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것은 아이에게도 금물이다. 그들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수도 없이 대화를 한다. 그리고 논쟁에 패배한 사람은 깨끗하게 승복한다. 아이들 싸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건 네가 틀렸어” “아니야, 네가 틀렸어…” “아니라니까, 조그만 녀석이” 그리고는 퍽하고 주먹이 올라간다. “너, 빨리 손 씻고 와” “왜, 엄마?” “왜는 무슨 왜야? 씻으라면 씻는 거지, 빨리 씻고 와!” 이러한 방법으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는 강압적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행동과 언어를 모방하면서 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도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볼 때에는 ‘그렇게 신경 쓰면서 왜 살아’할 정도로 세심하다. 그만큼 그런 방법에 습관화되어 있다. “너, 손 씻고 밥 먹어야지” “왜, 엄마?” “으응, 밖에서 흙놀이 하고 왔잖아” “그런데요?” “그 흙 속에는 작은 벌레들이 많아, 그 흙을 만지고 놀았으니 네 손에도 벌레가 묻어 있겠지? 그러니까 손을 안 씻고 밥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니? 벌레가 몸 속으로 들어가지, 그래서 벌레들이 네 밥도 빼앗아 먹고 부족하면 네 몸까지 파먹는 거야. 너, 가끔 배 아플 때 있지? 그것도 다 벌레 때문이야, 그러니 어서 가서 손 씻고 와야지” “응, 알았어요” 이러한 교육은 가정에서만 머물지 않고 학교수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에 익숙해진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을 때에도 그들은 이유없이 강요하지 않는다.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왜 또 한거야 화단의 꽃을 꺾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꽃이 아파한다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결국 죽게 된다고…” “그럼, 또 한번 그러면 어떤 벌도 받을 수 있니, 약속할 수 있어?” “으음… 다시 그러면 화단에 물을 주겠어요” 이렇게 대화를 통한 약속으로 아이는 약속에 대한 신의와 책임까지도 함께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방법으로도 도저히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부모도 많다. 그리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에는 지름길이 없다. 빨리 가르치기 위해 매질을 가하는 것은 당장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보는 무책임한 짓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잘못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잘못한 것은 그 즉시 지적해 주어야 아이가 알 수 있다. 거기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한 아이가 주걱을 가지고 공을 튀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주걱을 빼앗아 들고 아이에게 꿀밤을 먹였다. 아이는 왜 그러는 지 이해하지 못한다. 주걱이 꼭 밥을 풀 때에만 사용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보다는 아이에게 탁구 라켓이나 배드민턴 라켓을 쥐어주며 “공은 이걸로 치는 거란다. 그래야 공도 잘 튀겨지고 주걱은 밥을 풀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란다”라고 말하면 아이는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 아이에게 무엇을 명령할 때에는 반드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반항하기 쉽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교육 보다는 긍정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글_류태영 히브리대학 사회학박사 건국대 부총장 역임 농촌·청소년 미래재단 이사장 2007/10/06 경기복지뉴스 |
수필원고
대화로 아이를 설득해야 _류태영 박사의 유대인의 교육 이야기(33)
08/06/13 15:40 |
이명희 |
조회 40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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