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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원고

아버지의 위상-류태영 박사의 자녀 교육 이야기[8]
07/09/03 21:21 | 청소년미래재단 | 조회 2832 | 댓글 0
"아버지의 위상"



이스라엘 여성들은 90% 이상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생활이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분업화되어있고 남성들도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정말 일이 바빠서 아버지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핑계로 아이들 교육에 무관심한 남자들이 늘어가면서 우리의 교육은 반쪽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신은 집에서 뭘 하길래 아이가 저 모양이야?” “그러는 당신은 매일 술이나 먹고 늦게 와서 애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한 적이 없으면서 그래요?” 아이들 앞에서 싸우기 일쑤인 것이 우리나라 가정의 현주소가 아닐까? 우리는 교육이 여성의 전유물로 잘못 여겨왔다. 이러한 가정교육은 자칫 아이들의 조화로운 인격의 발전을 저해하기 쉽다. 어떤 아이들은 커서도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마마보이’가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여성들은 군복무를 해서 그런지 우리나라 여성들에 비해 매우 거칠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한 여성들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만큼은 결코 남편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쓰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이 잠자는 틈을 이용해 공원으로 나가 싸움을 하려다가도 도저히 싸울 기분이 들지 않아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형식적인 면만 보면 이스라엘 남성들은 매우 불행하다. 퇴근 후에는 모든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안청소도 해야 하고 밀린 빨래도 해야한다. 아내가 늦게 들어오면 음식까지 준비해야 한다. 아내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늦게 들어온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도 많다. 아내도 직장에서 온종일 시달리다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볼 때 그들에겐 좋은 점이 있다. 거실의 소파나 식탁의 의자에도 아버지의 자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대한 권위는 엄격해서 아버지가 출장으로 몇 달간 자리를 비워도 심지어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그 자리는 아버지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 자리는 아이들이 장난을 칠 때에도 결코 앉아있을 수 없다. 이스라엘 남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권위가 주어진다. 그것은 가족회의에서의 최종결정권이다. 
이러한 자리는 아버지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아버지의 권위를 생각한다.

 우리도 예전에는 식탁에서의 아버지 권위가 대단했다.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지 않으면 아이들은 결코 수저를 들 수 없었다. 아버지가 수저를 놓기 전에는 자녀들은 수저를 놓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다는 것은 더더구나 상상할 수 없었다. 이와같이 권위가 있는 동시에 그들은 아주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에도 꼼꼼히 신경을 쓴다.

 한번은 이웃에 놀러간 적이 있다. 아이가 싫증이 났는지 아빠 다리에 매달려 칭얼댔다. “아빠, 재미없어, 다른 놀이해요.” 아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 아이가 생각해서 말하도록 유도했다. “그럼 무엇을 할까?”“그림 그릴래요.” “그럼 뭘 그릴 것이며, 뭐가 필요할까?” “크레파스, 으음 … 아빠 다리가 필요해요.” “아빠 다리? 왜?” “숲속에서 노는 것을 그릴려구요. 아빠 다리에는 털이 많으니까 나무는 안 그려도 되잖아요.”  “참 좋은 생각이로구나.” 아버지는 바지를 걷어 올렸다. 아이는 크레파스가 없는지 사인펜을 들고 아버지의 장딴지에 쓱쓱 시커멓게 칠을 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가 즐겁게 노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 최종수정일 : <script>getDateFormat('20070328131933' , 'xxxx.xx.xx ');</script> 2007.03.2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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