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던가, “가난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이라고. 나는 이제껏 이 말을 “배부른 사람들이 하는 웃기는 소리.”라고만 생각해왔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꿈조차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모습을 주위서 줄곧 보아온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나는 이런 나의 생각이 도전을 피해보려는, 한낱 변명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류태영 박사의 자서전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를 통해서였다.
나는 그의 회고록을 보는 내내, 그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 같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말 이런 사람이 있구나.’하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환경에서 성공 신화를 이뤄낸, 말하자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그의 과거는 보통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초근목피를 입에 간신히 풀칠만 하는 상황 속에서도 일과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불만이야말로 배부른 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유년은 모든 생활고를 다 아우르는 듯 했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 속에 처해진다면, 필시 좌절하고 주저하고 말았을 그런 지독한 가난이었다.
그런데도 류태영 박사는 꿈을 잃지 않았다. 그는 구두닦이부터 시작하여 신문팔이, 미군의 하우스 보이, 거리의 리어카 행상 등 험한 일을 거치면서도 틈만 나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돈이 없어 다니지 못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자신의 지원자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늦은 나이의 만학일지언정 그는 항상 학습에 최선을 다했다. 배움에 대한 그의 집착이 유달리 강했던 것은, 그 자신이 배움만이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일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그가 취한 행동들, 예컨대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발 벗고 찾아나서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자신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 것은 실로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두운 현실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날린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면적 한계에 자신의 미래를 제한하는 데 반해, 그는 자신의 그 한계에 도전하여 극복해냄으로써 더 큰 미래를 개척해 나간 것이다.
몇 번이고 불가능한 일에 부닥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인 하느님이 있었고, 곁에는 항상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심중에는 머슴의 아들이라고는 믿기 힘든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민족의 농촌을 살리는 것이었다. 제때 먹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류 박사는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류태영 선생 자신부터가 가난의 비참함을 알았던 지라 그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척이지 당돌한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가 훗날 덴마크 이스라엘의 국왕에게, 어쩌면 너무도 무모하게 국비유학을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강인한 의지와 큰 포부를 품었기 때문이지 싶다.
정신없이 더 큰 목표, 더 큰 미래를 향해 달음박질하는 와중에도 그는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고아원의 아이들을 비롯해 농촌의 여러 배우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해 손수 교육을 하고, 또 작게나마 입을 것 먹을 것 등을 나누었던 것이다. 책의 내용 중 인상 깊은 글귀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만 바라ㄱ보곤 한다.’고 ‘그래서 분명 자신들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어쩌면 꼭 내 모습을 가리키는 것 같아 마음이 뜨끔했다. 그 절망 속에서도 나눔을 행한 그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참 내 생각만하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바람직한 성품 때문인지 강인한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독실한 신앙생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류태영 박사는 직면하는 고비마다 믿기 힘든 기적을 만들어 보인다. 하지만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기적 하나 하나에는 말로써는 형연할 수 없는 땀과 열정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어쩌면 이것이 참된 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차 말하지만, 덴마크 국왕에게 당돌하게도 직접 서신을 보낸 그의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한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다고나 할까. 일을 행하는 데 있어 소극적인 내게, 류태영 박사의 이런 면모는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청와대에서도 이스라엘 대통령 앞에서도 그 특유의 웃음을 지어 보이는 루 박사의 사진들을 보며, ‘용기’라는 것이야 말로 내가 얻어야할 첫 번째 무기구나 했다.
부의 편재, 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 하냐고 물을 때면 두서없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그리고는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저만치 뒤떨어진 출발선에서, 그것도 맨발에 신발 한 짝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노력으로도 넘지 못할 고개가 있다고 이제껏 생각해왔다. 말하자면 나의 자라남에는 한계가 있다며 꿈을 일축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류태영 박사의 일생을 들여다본 나는 이러한 나의 생각이 너무도 나태한 잡념임을 깨달았다.
정작 가장 심각한 것은, 그 세상 속에서 도전한번 해보지 않고 주저 앉아버리는 나약한 정신력이다. 이 책은 한 때 꿈마저 버리려 했던 나의 안일함을 깨뜨려 주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불편하다는 것이 나의 몸을 괴롭힐 수 있을지언정, 나의 정신은 그로 인해 더욱 강인해 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고마운가.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마주할 도전들이 무섭지 않다. 오히려, 그를 극복하고 나서 느낄 무언가에 벌써부터 가슴이 황홀할 따름이다.
나에게 있어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이 순간을 가져다 준 류태영 박사님께 감사의 말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