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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독후감자료

하계연수 감상평 쓰기 20기 구로고등학교 1학년 윤성민
21/08/23 15:10 | 관리자 | 조회 3129 | 댓글 0
중세 천년의 역사 소감문
 
구로고등학교 윤성민
 
우선 내가 이 강의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세계사에 대해서 잘 몰랐었고, 중학교 때에 배우지 못한 유럽 역사를 배워보기 위해서 이 강의를 선택하였다. 우선 나도 여기에 나오는 출연진들처럼 중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은 확실했다. 왜냐하면 중세하면 뭔가 폭력적이고 깨끗하지 않은 이미지가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의 초반부에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덧붙혀져서 만들어 진 것임을 알고 강의를 들을 때 고정관념을 약간 버리고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중세가 476년에서 1492년 정도로 1000년 정도라는 것과 서구의 역사가 오직 그리스도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새롭고 더욱 관심이 갔다. 서구에서는 그리스도교, 동방에서는 이슬람교라고 하는데 이것이 중세의 역사의 두 세력이라고 해서 이슬람은 왜? 라는 생각을 가지고 약간 이해가 안되기도 했지만 차차 설명을 듣다 보니 이해가 되어갔다. 우선 300년간 지속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박해된 사실을 보고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신념과 다르다고 박해를 하는 것은 철이 덜 들은 어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발령한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의 박해가 멈췄다는 사실을 듣고 종교의 자유가 중요한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중학교 때 배운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이 나와서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또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뉜 게기도 알게 되었고 그 시점에서 가톨릭교와 그리스 정교회가 나뉘었다는 사실을 사실 평소에도 궁금해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어서 명쾌했다.
중세의 또 다른 세력 이슬람에 대한 설명도 들었는데 이슬람교의 확장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서 놀랐다. 그 이유는 이슬람의 세금정책으로 인해서 그렇게 빠를 수 있었구나 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메카라는 지역이름이 나왔었는데 왜 그곳이 성지로 여겨지는가에 대해서도 추측해 볼 수가 있었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명칭을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공부해 본 적은 따로 없었기에 그 전쟁의 원인도 알지 못했는데 알게 되었고, 이것 역시 200년 동안이나 했고 8번이나 전투를 했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의 전쟁이 상상도 되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동로마 제국을 돕기위해서 파견한 서로마의 군대 이름이 십자군 이어서 그랬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그러나 꼭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에 이용하려는 사실을 듣고 역시 권력 다툼이 치열하고 그 당시에도 현재 도시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와 같은 개인주의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근데 그 파견된 십자군이 각 공작과 백작에 속한 것이고 단체로 통합되진 않아서 단합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단합이 안 된 정도가 공격하러 갈 때에 식량을 안 챙겨 갈 정도라고 해서 약간의 웃음을 자아냈고 한편으론 좀 멍청해 보이기까지 했다, 또 도움을 받는 입장인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서로마 제국의 삽자군이 식량을 깜빡하여 굶주리는 이 상황마저 정치적으로 강제로 약속을 맺어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되기도 했고 괘씸하기도 했다. 심지어 적군인 이슬람과 내통해서 십자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러 온 사람들 한테 너무하다는 생각과 정말 엉망진창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십자군은 동로마 황제가 식량을 주는 대신 얻어냈던 점령지를 동로마에게 준다는 정치적 약속을 깨고 십자군이 그 점령지를 차지해 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이 서로 한 대씩 때리는 것 같아 너무 유치해 보이기 까지 했다. 먹을 거로 장난 치고 그 복수로 약속을 깨는 것이 정말 어린아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향해 갔고 3년만에 예루살렘을 되찾는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처음 출전했던 병력은 6만 이었으나 탈환 후 남은 병력은 고작 13000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심지어 내부 분열이 있었다. 이 모든 게 결국은 같은 서구 세력들과의 다툼에서 비롯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로 다투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로 서로에게 좋은 영향만을 미치면서 같이 성장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웃긴 점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있어서의 과정이 더 우스운데 예루살렘을 지키던 이슬람 세력들이 분열해서 여러부분들로 쪼개진다. 그렇게 되면 십자군이 이슬람 세력 자신들의 영역을 공격 할 때에 우리 영역 말고 저기 다른 이슬람 세력을 공격해라 이런 식으로 청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십자군은 손쉽게 예루살렘을 탈환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십자군과 동로마 제국 황제가 대립할 때와 비슷한 상황 같아서 더 어이가 없기도 했고 너무 쉽게 먹고 들어 가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 까지 들었다.
여기서 나는 서구 세력이나 이슬람 세력이나 다 똑같은 사람이고 모두 같은 실수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 역시 그렇지 않은가 지금 나도 어린아이처럼 굴지는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래서 역사 공부를 하면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안 하게 해주는 힘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이슬람의 지도자가 나타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살라딘이다.
이 사람이 분열되었던 이슬람을 통합하는데 이슬람 세력 입장에서는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는 느낌과 다시 열심히 힘내서 탈환해 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 같다. 결국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재탈환 하였고 여기서 나는 역시 단합이 잘 되고 훌륭한 지도자가 이끄는 무리가 확실히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젠 십자군에서도 지도자가 한 명 나타나는데 그 사람이 리처드이다. 이제 십자군에게도 지도자가 생겼으니 해볼만 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젠 리처드와 살라딘의 대립 구도가 만들어 지면서 지도자와 지도자의 싸움으로 탄생 되었다. 그러나 살라딘은 문화적 수준이 높았고 배운 사람이었으나 이와 반대로 리처드는 용맹하고 강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살라딘이 리처드의 말도 안 타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용맹함을 높게 사서 말을 선물하는데 여기서 나는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구나 라는 것을 느꼈고 살라딘이 조금은 멋있어 보여 졌다. 또 리처드가 열병에 걸렸을 때 살라딘 자신의 주치의를 보내서 치료했다는 사실을 듣고 대한민국 현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을 보낸 것은 그렇다 쳐도 병을 치료해주기까지 관용적이라는 것이 참 본받고 싶으면서도 범접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결국 리처드는 이슬람에게 탈환 당한 예루살렘을 다시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간 리처드는 살라딘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서구 세력에서 살라딘을 옹호하는 단체들 까지 나왔다. 정말 역시 배운 사람이 강한 사람보다 때로는 더 강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몇 백 년 전에도 이렇게 배운 사람이 이기는데 현대는 어떨까 생각을 해보니 역시 배운 사람이 앞서는 것 같다. 이래서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의 원래 목표인 예루살렘 탈환은 끝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종교인들의 욕심만 확인한 전쟁이 되어 버리고 되어 버렸다. 그러나 꼭 이러한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9세기~11세기에는 이슬람이 문화가 더더욱 발전했었는데 이슬람 양식이 전해지면서 서구 문화와 합쳐지면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역시 꼭 어두운 면이 있다면 좋은 면도 꼭 따라오는 것 같다. 또 건축물들 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많은 교류가 있었는데 영어 AL이 붙은 단어는 이슬람에서 넘어온 것 일 수 있다 라는 사실을 듣고 굉장히 많은 원소 기호들이 떠올랐고 영어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신기 하기도 했고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재밌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갈래로 연금술이 있는데
난 사실 강의를 듣기 전까지 연금술은 그저 멍청한 사람들의 허황된 의미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연금술을 만드는 과정중에서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발견해내게 되었고, 또 증류주 같은 부류의 술도 증류 기술과 함께 발전하게 되면서 서구에서 음주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역시 실패는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이 실패이고 이제 나는 연금술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연금술 자체는 실패 하였지만 우선 시도는 했고 다른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이러한 발전을 한 데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처음에 그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은 서구 사람인데 이슬람 문화와 무슨 상관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설명을 듣다 보니 차차 알아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따르던 사람들이 파문 당해서 시리아에서 공부 중일 때 이슬람 세력이 공격해서 얼떨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과 부가적인 책들 예를 들면 의학, 수학 천문학 등의 다양한 학자들이 쓴 책 들을 주웠는데 그냥 공격하다가 우연히 얻어 걸린 셈 이라서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도 언어가 달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이슬람의 알마문 이라는 사람이 발견하여 그 책들을 아랍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 그 집념과 노력이 대단한 것 같다, 그냥 지나쳤을 법도 한데 알아보고 노력까지 기울였다는게 대단한 것 같다. 그러나 발전이 있으면 몰락도 있는 것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과 함께 발전한 이슬람 문화는 극단적인 종교지상주의자들의 등장을 게기로 몰락 하게 되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 이슬람 문화권 나라들과 세계 문화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에 가려져서 오히려 서구에서는 잊혀졌던 그는 이후 이슬람지역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접해서 연구했던 사람들과 만나고 책을 접해서 다시 서구에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책에 현상금 까지 붙이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진가를 진작에 알아봤다면 정말 최소 몇 십년은 빨리 서구가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이처럼 기회가 와도 발견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듯이 기회를 발견하고 진가를 알아 보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다.
결국 책에 현상금 까지 붙인 결과 책을 찾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슬람이 이미 아랍어로 번역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본국에서 쓰인 책을 다시 번역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고 그때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한편으론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번역한 결과 50년도 되지 않아서 번역을 하는 것에 성공한다. 정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실 십자군 전쟁에 의해서 발생된 문화적 교류 이므로 십자군 전쟁이 꼭 부정적인 영향만 끼쳤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일부는 인정하나 나머지는 배척하는 사람들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예나 지금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같은 기준을 하나 세워두면 그 기준을 두고 편 가르기 하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중립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주장은 “항상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답은 아니다” 라는 주장으로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는 형식의 입장을 세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의 의견에 적극 동의 한다. 역사 역시 해석의 학문이므로 어떠한 사실을 받아 들일 때에 각각 사람마다 다르므로 극단적인 입장을 가지지 않고 서로를 비난하지도 않고 서로의 해석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이 강의에서 느낀 점과 알게 된 점은 전쟁은 하면 안되는 것 이지만 하게 되더라도 꼭 나쁜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기회가 왔을 때에 강의에서 배운 것처럼 재빨리 알아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사실을 마주 할 때에 다른 사람의 극단적인 견해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보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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