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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생독후감자료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를 읽고 - 5기 안영도
07/09/03 20:09 | 청소년미래재단 | 조회 4343 | 댓글 0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를 읽고  


                                              매산고 1년 안영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책의 처음이자 끝이고 한 문장이자 전체인 이 짧은 글귀는 나를 이 책 속으로 강하게 이끌어 들였다. 이로 인해 나는 류태영이라는 대단한 사람을 알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 이런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에  한없이 기쁨을 느꼈다.

 어렸을 적의 류태영은 정말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가난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집에서 최초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학문에 대한 열의가 있었지만 돈이 없어 남들보다 더 늦은 나이인 열여덟 살에 비로소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고학을 하겠다는 의지만으로 거의 빈손으로 무작정 상경.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이스케이크 장사 등을 하는 등의 갖은 노력 끝에 겨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의 참기 힘든 고통을 학문에 대한 의지로 바꾸어 고단한 삶을 견뎌왔던 그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것을 비췄다. 바로 의지를 가지라는 것이다. 의지는 참기 힘들만큼 가난했고 확실한 미래조차 없는 빛이 없는 어두운 현실에 있는 그에게 가난 속에서 고생을 하면서도 유학의 꿈을 꾸게 하였다. 그는 수없이 굶고 참으며 고생하면서도 비관하기는커녕 그 고통을 참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과 그의 주위 분들께 감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 류태영에게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유학이라는 어려운 꿈을 꾸게 된 지 십 수 년, 류태영은 덴마크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우리나라와 덴마크는 수교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의 덴마크로의 유학, 그것도 달랑 편지 한 통 쓰고 그 나라의 초청을 받아 유학을 가는 경우는 가히 기적에 가까웠다. 덴마크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던 그가 까막눈으로 시작한 덴마크 유학은 그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그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는 그곳, 덴마크에서 또다시 한층 더 새로운 꿈을 꾼다. 덴마크에서만이 아닌 전 유럽을 순회하며 농촌을 연구 하겠다는 아주 당찬 꿈을……. 거의 빈손에 가까웠지만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의 의지로 덴마크 정부의 특별 예산 약 3만 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지식을 습득 할 수 있었다. 이는 어려운 환경이 두려워서 해보기도 전에 안 될 것이라고 포기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화이다. 귀국 후, 그는 청와대의 요청으로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는 중심에서 일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가와 민족에 대한 진실한 마음이 깃들어 있는 그의 강의가 대통령과 그 가족, 그리고 정부 요인들의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는 그 일화는 내게 너무나 큰 감동과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 생활의 대부분이 안정되어 가고 생활하는데 별 걱정이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는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다. 다시 이스라엘로의 유학의 꿈을 꾸고 그것을 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만류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농촌의 발전을 위해 공부를 더 하고 돌아오겠다는 굳은 의지만을 남기고 유학의 길을 떠났다. 꿈, 그는 만족스러운 현실 상황에서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층 더 새로워질 자신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꾸어왔던 꿈을 한 층 더 훌륭하게 수행해 내기 위해서 그러한 결심을 한 것이다. 1973년 4월, 나이 37세에 류태영은 이스라엘 국비장학생으로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그는 최단 시일, 4년 반 내에 이스라엘 최고 명문대인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고, 동양인 최초로 이스라엘 국립대학인 벤구리온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류태영은 이스라엘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만큼 유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장기간의 이스라엘 생활을 뒤로한 채 귀국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리 그곳에서의 생활이 안정되고 인정을 받아도 한시도 조국을 잊어본 적이 없었기에 결국 귀국했고, 모교인 건국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이제 얼굴 곳곳에 주름살이 박힌 그런 노인이 된 류태영 박사는 현재 도산 아카데미연구원 원장, 건국대학교 농업교육과 교수, 한국・이스라엘 친선협회 상임부회장, 대산 농촌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및 전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을 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류태영 박사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역경 속에서 갖은 시련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이 되어 주자는 뜻에서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극복해 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 나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며 고학을 해 자수성가했다는 내용.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인 자신과 하나님을 믿고 대담하게 행동해 아주 훌륭한 보상들을 얻었다는 그런 내용도 아주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큰 변화를 느끼게 해 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아주 짧은 글귀였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엄마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다니던 곳이 바로 교회였다. 하지만 이 짧은 문구, 속칭 빌사일삼은 나에게 하나님에 대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류태영 박사의 성공은 류태영 박사 혼자 힘으로 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었다. 분명 그 앞에서 하나님이 끌어주셨고, 류태영 박사가 하나님께 받은 도움을 나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도움으로 말미암아 류태영 박사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되어서 국가와 민족 발전에 한 몫 일조할 것이다.


* 최종수정일 : <script>getDateFormat('20061010100426' , 'xxxx.xx.xx ');</script> 2006.10.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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