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내혁명’을 통한 관리능력 향상기법
나는 세계 여러나라에 다녀봤다. 관광을 하느라고 다닌 것은 아니고 학회일로, 정부일로, 그나라에서 초청을 해서 전부 다녀본 나라의 수는 2박3일 이상 머물렀던 나라만 한 45개국 쯤 된다. 동남아시아의 모든 나라, 유럽의 모든 나라, 남태평양의 뉴질랜드, 호주, 사모아, 피지, 동구권에 있는 나라를 다녔다. 세계 여러나라를 다녔다는 것을 자랑할려는 뜻이 아니라, 세계를 다니면서 보니까 사람사는 모습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생활수준으로 말한다면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복지 선진국가가 있는가 하면,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할만큼 원시적인 생활속에서 사는 사람도 그 수가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또 가치기준, 가치관에 의해서 우리들의 사고방식, 행동양식이 결정되어 지는데, 가치기준도 가지각색이다. 몇가지 예만 한 번 들어서 잠깐 참고를 하고자 한다. 잘사는 정도로 말하기로 한다면 내가 가서 공부했던 덴마크를 비롯해 몇몇 나라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미국이 잘산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잘산다 못산다는 기준은 그나라에서 제일 못사는 층과 우리나라에서 제일 못사는 층 즉, 나라와 나라사이에 제일 못사는 층을 비교해서 그 수준이 결정하는 것이다. 잘사는 층을 비교한다면 아주 미개한 나라에서도 잘사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재벌이나 미국 재벌의 생활면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잘산다. 그런데 못사는 층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 국민저변에 얼마만큼 복지가 적용되냐는 것이다. 덴마크가 복지국가이다. 그이유는 학교 교육시설을 보더라도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수업료나 등록금을 한 푼 받는 법이 없다. 그리고 보험붕에 의료보험 없어져 버린지가 오래된다. 의료보험이라는 것이 없다. 70년대 우리가 경제 한참 일어날 무렵에 정부에서 복지기금을 가지고 의료보험회사를 사서 없애 버렸다. 그리고 국민전부에게 의료혜택을 주도록 되있어 농촌에서는 70,80 세대에 전문의가 한사람씩 배치되고, 도시에서는 백여세대에 한사람씩 있어서 전부 주치의가 있다. 가정의 제도를 도입해서 아무때나 주치의와 무료로 상담하고, 주치의가 싸인만 하면 약국에 가도 무료, 병원에 입원을 두달, 석달, 일년을 해도 부담이 없다. 복지국가가 이쯤은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 우리나라 학생이 가도 등록금을 하나도 안받는 나라가 열한개있다. 가깝게는 프랑스나 독일도 마찬가지이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런나라를 비롯해서 외국사람에게 까지도 등록금을 한푼도 안받는다. 거기에다 또 장학금도 준다. 그렇게 잘산다. 못사는 생활수준에 있는 나라를 본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못사는 나라 상상할 때 동남아시아의 스리랑카나 태국의 오지마을 등 이런 못사는 나라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의 이란자라고 적도지역에 있는 섬의 고원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가서 보면 꼭 타임머신을 타고 3천년전으로 거슬러 가는 것 같다. 바로 작년에 내가 아프리카에 초대받아서 가서 강의도 하면서 못사는 종족을 가보았다. 짐승이 드글드글거리는 우리 텔레비젼에 동물의 왕국에서 보여주는 그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인데 집한채 크기가 4평이다. 3평에서 한 5평정도의 초가집이다. 지붕은 초가로 이었고, 초가라는 것이 우리같이 볏짚초가가 아니고 산의 갈대로 했고, 벽은 나무로 해서 우리 옛날 시골에서 외때기 얽듯이 얽혀 매었는데 거기다 바르는 것이 우리는 흙에다 지푸라기를 썰어서 섞어가지고 발랐지만 이사람들은 소똥을 주워다가 소똥을 이겨서 발랐다. 집집마다 들어가면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소똥으로 전부 발랐기 때문에 창문은 하나도 없고 방바닥은 땅바닥이다. 그냥 마당이나 방바닥이나 높이도 똑같고, 집집마다 가보면 가구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컵도, 후라이판도, 솥단지도 아무것도 없다. 내가 보는 집만 그런가하고 관광객한테 공개하지 않는 그런 농촌을, 오지마을을 가자고 해서 안내자에게 돈주고 동네 추장한테 돈좀 주고가서 보았다. 이집저집 다 다녀보니까 아무것도 없었다. 추장방만 얼룩말 가죽이 하나 깔려있었다. 무엇을 해먹고 살기에 그런가 보니, 먹는 것이 딱 하나다. 소, 염소, 양젖만 먹는다. 그러므로 그릇도 필요없고, 요리도 필요없이 그냥 젖을 짜서 먹는다. 가죽으로 된 그릇에다 젖을 짜서 먹는데 어떨때 짤 때보니까, 애기가 먹겠다고 낑낑하니까 미처 짜다 줄 시간이 없으니까 동물젖에다 그냥 빨리는 것이다. 애가 달라 붙어서 빨아 먹는 것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집이 캠프처럼 둥그렇게 보통 일곱세대, 여덟세대 대개가 이십여세대가 있는데, 둥그렇게 지어서 울타리를 하고 낮에는 장정들이 소를 몰고 들판에 가서 뜯어 먹히고는 저녁에 들어와서 방에 재우는데 동네 가운데가 외양간이나 똑같다. 소들이 어떻게 똥을 싸서 이겨 붙이는지 내가 구두신고 가서 조심조심 다녔는데도 40분쯤 있다 나오니 구두위까지 똥이 올라와 있었다. 사람도 화장실도 없어 거기서 소하고 함께 그냥 싼다. 사람 똥에는 구더기가 끓리고 파리가 너무 많아서 아이들이 외국사람이 가니까 졸졸 따라 오는데 코에 대여섯마리, 눈에 대여섯마리, 입가에 대여섯마리 시커멓게 붙어가지고 다니다. 어떤 애는 파리를 쫓으니까 앵하고 파리가 다시 돌아온다. 쫓다가 안 쫓기니까 파리가 붙어서 다니다. 그리고 그지역의 아줌마들, 처녀, 할머니 남녀를 불문하고 신발을 신은 사람이 하나도 없이 맨발로 다닌다. 구두를 신고 다녀도 구두위까지 똥이 올라오는데 맨발로 다니니 발가락 사이로, 발등으로 소똥이 더덕더덕 올라와있다. 또한 목욕이라는 것은 한 일이 없다. 건조지역이고, 고원지대라 세수하는 일도 없다. 그 지역에서 보고 있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3천년전으로 거슬어 올라간 것 같았다. 몇 사람이 사는게 아니라, 케냐에만 사십만명이 산다. 케냐에서 못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모양을 보면 얼굴이 다 똑같다. 색만 새까맣지 다 똑같다. 잘사는 나라, 독일이나 스웨덴이나 이런 나라에 가서 보면 눈빛이 다르다. 눈을 번쩍번쩍 뜨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빛이 강렬하다. 왜 그렇게 못살까? 수백년 수천년 동안을 그대로 지녀 나오는 것이다. 밥만 먹으면 나무그늘에서 놀면서 아무 일도 안한다. 농사짓는 것도 없다. 그지역에 강이 있어서 강을 가봤더니, 숭어, 붕어, 잉어같은 물고기들 막 돌아다니는데 그냥 몽둥이로 쳐도 잡을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사람들은 먹지 않는다. 물고기는 악어나 뱀이 잡아 먹는 걸로 알고 일체 먹지 않는다. 나중에 인류학자한테 들어보니 유목민들은 물고기를 안 먹는다고 한다. 몽골에 가더라도 물고기는 안 잡아먹는다. 어떤 사람이 고기가 잘 잡히는 표현을 하면서 내를 막아놓고 물이 넘어가게 하고 톱을 거꾸로 걸어 놓으면 고기가 떨어져서 배지가 톡톡 터져서 다 죽는다고 할 정도이다. 이 지구상에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 이런곳에 가보면 참 이렇게 차이가 너무나 난다.
의식구조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다. 의식구조적인 면에서 보면 윤리관, 가치관, 부부윤리부터해서 남녀간의 성관계가 참 차이가 많이난다. 가까운 중국을 보면, 중국에는 종족들이 한 50종족이 살며, 중국종족을 한족이라고 한다. 우리한국이라는 한자가 아니라 한문이라고 하는 한자에서의 한족으로, 말고 한 50여 종족이 사는데 어떤 종족은요. 결혼식을 하고는 결혼식하는 순간 첫날 저녁에 부부간에 안자고 헤어져요. 친정으로 간다고, 그러면 친정부모가 시집을 간 자기딸을 정말로 신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무엇이냐 아무 남자라는 우리딸한테 애기를 배게 해달라 이거에요. 그래가지고는 검증이 된 즉 말하자면 장가를 가서 애기를 난 경험이 있는 남자한테 사정해서 우리딸하고 자 달라는 거에요. 그래가지고는 임신해야 돼요. 그래서 애기를 낳아야 돼요. 그러면 애기 낳을때까지 한 번만 자서 되겠어요? 여러번 자야지. 그래서 애기를 낳으면 애기를 안고 시집을 가는 거요. 그러면 시집에서 대환영이요. 그러니 종족은 첫 애기는 전부 남의 애기야. 그래서 왜 그건가 그랬더니, 결혼의 목적이 오직 종족번식이 목적이요. 요즘같이 의료기술이 발달되어서 조사를 해가지고 남자가 죽은 정자를 자꾸 내놓는다든지, 남자책임인지, 여자책임인지 나타나지만 그런 원시적인 생활을 한 사람은 애기나오는 것은 오직 여자에게서 나오니 여자가 애기 나오는 기계라, 기계가 생생한가 생생하지 않은가 이걸 검색하는 거요. 검색하는 것을 의료로 조사할 것이요. 낳아갔고 와라. 이거 임신했을 때 배가 불룩했을 때 와서 봐야 돼. 애배었다 낳다 그리고 데리고 가야 아 이기계가 생생하다 우리가 그대로 며느리로 받아줄 수 있다. 그래서 받아주는 거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들한테 가서 세상에 이런놈의 결혼이 어디있냐. 미개하다고 하겠지만 그 사람은 우리보고 미개하다고 그래요. 세상에 기계를 살 때 검색도 안하고 사는게 어느 법이 있냐. 이런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하기로 말하면은 여기서 아마 세시간 얘기도 다 못 끝낼거에요. 그런데 그속에서 우리 생각해 보자고 왜냐면 머리 속의 생각에 달려있다 그말이요. 가치관이 어디에서 있느냐? 이것에 따라서 달라요. 아주 심한거 내가 하나만 더 얘기 한 번 더 얘기하고 이런 우스운 얘기는 좀 진부하겠습니다만은 아프리카의 서부지역에 어떤 종족을 보니까, 집단, 무리 군자 군혼을 이루고 있는 종족을 만났어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하고 대화를 하는데 보니까 남편들이 열입곱, 부인들이 열여덟, 한타락으로 사는 거에요. 여러분 중동이나 이런데에서 부인들이 서너명된다 소리는 하도 많이 들었지만은 그런말 못 들었잖아요? 저도 못 들었어요. 그래서 자꾸 물었어요. 부부라는 것은 구별되는게 다정하게 나란히 옆에 앉았다고 부부가 아니고 악수했다고 부부가 아니고, 부부 꼭 구별되는게 있다면 저녁에 잘 때 한 이불속에 둘이 들어가서 자는게 부부인데 아니 열여덟명을 어떻게 데리고 자냐? 그리고 열일곱명이 열여덟명과 함께 부부라는데 어떻게 자냐? 뭐 이거 남의 잠자는거 까지 물어보는거 실례지만 나는 무릅쓰고 또 물어봤다구요. 그러니 대답을 안해요. 그래서 내 그 순간에 아 당신들은 그러면 틀림없이 기다란 방에서 남자하나, 여자하나, 남자하나, 여자하나 이렇게 섞엇 쫙 드러누우면 열여덟명 사이에 열일곱명이 싹 끼워서 자느냐? 그러더니 비실비실 웃으면서 안그런다고 하면서 손가락 하나 가르키는데, 그사람이 추장이요. 키가 저보다 크고, 귀가 탁 빠지고, 아주 눈썹이 서울시장 그양반처럼 초가집 칠상처럼 이렇게 이렇게 되고 눈이 번쩍번쩍 하는데, 그 사람이 지정을 해준대요. 오늘 저녁에 너는 2호, 너는 3호, 너는 5호, 너는 7호 이렇게 짝짝짝 짝을 지어서 잘때는 둘씩 잔대요. 그리고 아무때든지 그사람 마음이 내킬 때 어떨때는 일주일, 어떨때는 열흘, 어떨때는 2주일마다 바꿔하면 쭉 바꾼대요. 그런데 그 동네에서 애기를 낳으면 남자들은 our children. my children이 없어. 일주일마다 바꿔자는데 어떤 놈이 내 애기에요 이게. 여자들은 자기 몸에서 나왔으니까 마이 칠드런. 그래서 속에서 웃음이 나오는데 혼자 웃을 수도 없고 참느라고 애쓰는데, 그다음 반대 질문을 해서 내가 곤혹을 치렀어요. 너는 부인이 몇이냐? 그래요. 근데 일부다처제 국가에서는 부인이 하나라면은요 아주 사람을 얕봐요. 오직 못나면 장가를 한 번밖에 못갔냐 이거에요. 그러니까 여자들도요 남편이 서넛, 너댓명 되어야 어디가서 재요. 우리남편은 인기가 있고 똑똑하고 잘나서 부인이 다섯인데 내가 그중에 하나다. 이런다고요. 그러고 하나만 있는 사람은 오직 못난 남편한테 시집갔으면 너만 데리고 살겠냐? 이래요. 그래서 내가 오리엔테이션을 하느라고 우리나라는 일부일처다. 공직자가 몰래 세컨드를 데리고 사는거 발견만 되면 모가지가 탁 떨어진다 말이요. 축첩자는 공직에서 파면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그래서 나는 하나다. 못나서 하나가 아니라 일부일처라 하나다. 그러면 그러냐고 대개 그러는데 이사람은 그냥 눈을 똑 뜨고 하나는 하난데 일년만에 바꾸냐, 석달만에 바꾸냐? 그래요. 하나는 하난데 얼마만에 바꿔가면서 하나냐? 그래서 우리는 바꾸지 않고 우리나라 옛날말에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까지 산다. 그러면서 설명을 했지요 우리머리가 시커먼데 늙으면 하얀머리가 되는데 lose off onion 이것이 하얗니까 그런다. 아 갸우뚱 갸우뚱하면서 별놈의 나라가 다있다 그래요. 거기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 딱 붙이는 소리가 sexual culture 성문화가 그렇게 미개한 나라가 다 있냐? 어째서 미개하다고 그래요? 아니 어떻게 사람이 아침에도 닭고기, 점심도 닭고기, 저녁도 닭고기, 오늘도 닭고기, 내일도 닭고기, 일생동안 닭고기만 먹고 사냐? 이거요. 우리같이 메뉴가 열여덟개가 있어 가지고 요렇게 살아야 성문화가 제대로 된거 아니냐? 여러분 웃으면서 재미있게 들었지요? 그 가서 들으면 심각하더라구요. 아니 어쩌면은 머리가 딱 굳었다구요. 굳어서 하나의 가치관으로 정립되어서 그게 전승되어 내려가고 당연하고 그렇지 않는 것들이 병신이야. 저보고 그래요. 어떻게 너의 머리는 좀 똑똑하다며 어떻게 너의 머리는 벽돌짝처럼 꽉꽉 찍혀가지고 그렇지 않으면 큰일나는 것으로, 어쩌다 잘못해서 시디신 김치를 만나면 일생동안 신김치 먹고사냐? 이거에요. 아 그렇게 미개한 놈이 어디가 있느냐는 거에요. 이게. 이것을 한 번 축소해서 우리사회에서 보더래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 다릅니다. 지향하는 미래가 다릅니다. 행동양식,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머릿속에 표준, 자기머리에 명령을 내리는 어떤 마음의 사령탑이 어떤 색깔이냐 어떤 모양이냐에 따라서 사람운명이 달라집니다. 안그럽니까? 꼭 아프리카나 뭐 어디 중국의 어떤 종족의 예를 꼭 들어야만 하는거 아니에요. 극단적인 예중의 하나입니다만은 여기 앉아계시는 분도 지금 유니폼을 입고 다 교보가족으로 중추인물들로 앉아있습니다만은 다 같은 것 같지만은 앞으로 십년후에 사정이 바로 달라집니다. 이십년후에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이 그룹에서 소외되어서 또 다른 그룹에도 소외되고 소외되고 소외되어서 개밥의 도토리처럼 한쪽에 떨어져나갈 사람도 이중에 있을란지 모르고 이중에 승승장구해서 이 교보의 공채사원으로써 사장이 될 사람도 있고 또는 계열기업사의 사장이 된다든지 아니면 자기가 회사를 세워서 사장이 된다든지 아니면 정계에 나간다든지 어디에 나갈지 모릅니다. 이거 뭘로 정합니까? 자기 마음입니다. 사람 가슴가슴마다 잘나고 못나고 똑똑하고 못나고 간에 다 가지고 있는 그 마음하나를 어떻게 움직이느냐, 마음을 어떻게 간수하느냐 이것에 따라서 개인의 운명이 달라지고, 그런 개인개인이 속한 집단이 달라집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이 그 마음하나 제대로 움직이고 간수한다면은 여러분 개인의 장래가 달라질 것이며, 여러분이 소속한 이 교보가 이 교보생명이 달라집니다. 두말할 것 없지요. 더 나아가서 이 민족과 이 국가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것을 간수해야 되고, 마음에서 명령을 내리는 내야의 명령이 외야에 작용하는 이 참일과 연결고리들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움직여지느냐? 여기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합니다. 그것을 심층연구해서 영국에서 요즘에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심령과학까지 들어갔습니다. 심령에는 아주 그냥 마음, 마음이 가진 것이 우리가 생각해서 좋다나쁘다 느끼고 기분좋다 이런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잠재력과 초인력까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그러다가 영국에서는 과거 인도에서나 좀했지. 영국에서는 안했는데 영국에서 굉장히 연구 붐이 생겼어요. 그래가지고 옛날 우리가 사랑방에서 듣던 손오공 얘기같은 그것을 현실로 바꿔요. 장풍, 요즘에 가끔 텔레비에서 나오죠? 눈 딱 감겨놓고 손가락으로 책 요렇게 대면은 책을 다 읽는다고. 마음에 영적인 발전이 고도로 집중력을 가지고 고도로 이르면 그거 읽는다고 눈을 감고 딱 손가락으로 책을 다 대면 다 읽어요. 모르는 책을 갖다 놨는데, 인도에서는 고도의 정신력에 의해서 아예 중력을 찾아내요. 중력이란 것은 뭐에요? 우리가 있으면 떨어지지요? 저 성층관에 가면은 무중력 상태 아닙니까? 무중력 공중에 뜨지요? 여기는 떨어져요. 중력 때문에, 중력을 찾아내요. 앉아서 고도로 정신집중을 해서 찾아내면은 사람이 떠요. 자석으로 뜨는게 아니에요. 그냥 앉은채 그대로 뜬다구요. 이건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러면 도사가 되는데 이르지는 못할망정 그 훨씬 미처 못가는 우리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엄청난 잠재력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다는 것, 이것을 오늘 저녁 난 여러분과 함께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여러 가지 사례들을 들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그러기 전에 내 이런 얘기를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교보생명의 역사적인 운명을 누가 쥐고 있느냐?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내가 쥐고 있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나갈 때 이 회사는 아주 달라집니다. 다른 회사가 다 망하고 다 어렵다고 하고 다 안된다고 하더라도 해낼 수 있는 것이, 그 마음가짐, 그 결심, 그 결의 이것에 따라서 달라질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여러분들이 저하고의 만남을 계기로 해서 한사람 한사람의 가슴속에 미래지향적인 등불을 키고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여러 사례들을 들어서 말씀드릴 때 여러분도 거기에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껴지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의 의식구조는 무의식중에서 무의식 가운데에 우리 일상생활 환경이 그렇습니다. 무의식 가운데에서 불가능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많이 굳어져 있습니다. 요즘에는 잡지나 이런 것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만은 제가 5년전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그때 대학교 1학년 때에요. 이 아이가 집에와서 저녁에 거실에 탁자가 있는데 유리로 된 탁자가 있었어요. 거실탁자에 두툼한 유리 깔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달걀을 가져오더니, 아빠 이 달걀이 유리탁자위에 세워진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더라구. 이놈아 콜롬버스 달걀이지. 국민학교때 콜롬버스 달걀 안배운 사람없잖아요. 콜롬버스가 달걀을 세우는 사람한테 가서 밑동아리 탁 깨서 세웠다구 하잖아요. 다른사람한테 다 못세우는데, 그래서 그것이 내머릿속에 일생동안 남아있어요. 달걀은 서지 않는걸로. 그리고 드러누워버린다구요. 밑동이나 조금 깨서 세우면 설수 있는 걸로 이렇게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 아이가, 이게 섭니다. 그래 세워봐라. 그런데 요렇게 요렇게 하더니 달걀을 딱 세워요. 그래서 내가 세우자마자 그냥 무의식중에 내입에서 뭐라고 하냐면, 야 너 요술하니? 그러니까 얘가 막 정색을 하고 저보고 뭐라고 하는가 하니, 아빠 교수님이 되어서 이 달걀을 세우는 것을 보고도 못 믿습니까? 세워 놓은 것을 보고도 내가 못 믿어서, 요술하니? 그랬단 말이야. 그러니까 얘가 접시를 갖다가 탁 깨서 달걀이 속에서 탁 나와요. 그냥 보통 달걀이요. 야 나도 세울수 있니? 그랬단 말이야. 그러믄요. 세우니까 서더라구요. 여러분 아신 분은 새로운 얘기 아닙니다만은 모르시는 분은 한번 처음 들으시는 분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무의식중에 달걀은 안서는 걸로, 이렇게 동글동글한 것이 탁자위에 어떻게 섭니까? 안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노력해본 일도 없고, 노력할라고도 안하고 테스트 해본 일도 없어요. 할려고 마음도 안먹었다구. 그런데 그게 서게 되있어요. 물론 나중에 집에가서 연습해 보세요. 물론 그 기법에 대해서는 조금 2,3초 4,5초 노력을 해야 돼요. 왜 그런고 하니 속에 있는 노른자위가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한쪽으로 붙었으면 그리 자꾸 드러누워요. 그러니까 동그란 것 중에서 밑에가 좀크고 위에 삐죽한 것으로 밑에 큰 것을 놓고는 조금 흔들던지 해서 한참 안정시키면 돼. 안정시키면 노른자위가 착 자리에 가운데 앉은듯 싶으면 그다음에 네손가락 중에서 요놈 떼고 이거 떼고 이거 떼고 이렇게 하면은 꺼벅 넘어갈려 그래. 꺼벅 넘어가면 조금 이래 주고 조금 이렇게 해주면 섰어요. 식당에 가서 내가 몇 개를 생계란을 몇 개를 세웠더니 식당 아줌마들이 요술아저씨 왔다고 와서 보고 야단 났다구요. 이 비교는 조그마한 얘기입니다. 우리 일상주변에는 노력해보지도 않고 노력할려고 하는 마음도 안먹고 불가능하다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탈피하고 여기에서 우리가 일어나자하는 얘기입니다. 저는 교육을 하면서 제자들을 훈련을 하면서 그런 케이스들을 너무너무 많이 봤습니다. 제 자신도 경험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한가지씩 내 사례를 들어서 말씀을 드릴까 싶습니다. 우선 여기 서있는 사람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하면은 여러분 안믿을 겁니다. 저는 한번 이런 마음을 먹었어요. 이스라엘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 영화를 이스라엘에 관한 영화를 제작해서 한국사람한테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민성, 안보의식, 농업, 키브츠, 모샤브 생활상태를 동적인 사진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서 해두면 좋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영화를 만들어 본 일도 없고, 돈도 없고, 만들어낸 사람도 없고, 시나리오를 써본 일도 없고 지금 여러분들과 똑같아요. 돈 한푼도 없어요. 만들어야 겠다. 만들겠어요? 만들어야 겠다 마음먹었어요. 만들겠냐고요? 나는 한번 마음을 먹고 생각에 또 생각을 하다가 만들겠다. 자 무엇부터 시작하겠어요? 나는 구상을 했어요. 만들면 어떤식으로 영화를 만들거냐.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에 와가지고 여기저기를 방문하면서 설명을 듣고 방문처마다 사람이 나와서 설명을 하고 키브츠가 어떻게 생겼다 군대에 가면 어떻겠다 젊은 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한다 현자을 가서 보고 요런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 그런생각을. 또 성지순례,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것도 좀 동적인 사진을 만들어야 겠다.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대개 구상을 했어요. 어떻게 촬영하고 몇분짜리를 하고, 그래서 대개 한 50분, 55분짜리 만든다. 16m. 35m는 너무 크니까 16m로 한다. 오피컬사운드. 마그네틱사운드가 있고, 오피컬사운드 있고, 광합사운드가 있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야겠다 마음먹고는 계획서를 짰어요. 틈이 있을때마다 짜고 짜고해서 만들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 우선 돈이 있어야지요. 그러나 머릿속에 생각한게 우리 교회에, 제가 교회에 다니는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중에 교회의 헌금도 잘하는 장로가 있어 그 내가 편지를 했어. 이스라엘에 관한 성지순례 영화를 만들텐데 당신이 돈을 좀 대줄 용의가 없느냐? 내가 드는지도 모르고 그사람도 얼마 드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편지를 냈는데 그사람이 다행히 그때는 박사가 아니니까, 류선생이 그런거 하면은 내가 돈을 대겠다. 편지가. 아 기분이 그냥 시원하더라구. 얼마 드는지도 몰라 그사람도, 나도 얼마 드는지도 모르고, 추측에 한 2,3백만원 4,5백만원이면 만들지 않을까 요런 생각을 했어요. 여러분 홍보실에 계신 분은 알겠지만은 그거 하나 만들려면 몇억 들어갑니다. 돈이. 그런데 그걸 몰랐단 말이요 이게. 하여튼 그 다음에는 또 생각을 한거야. 무엇이든지 자꾸 궁리를 하고, 아까 창립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만은 창의력을 발휘해서 창출할려고 하는 노력과 그런 무한된 길들임. 그런 훈련속에서 살면은 샘이 자꾸 나와요. 샘이 나와요. 샘 솟으면 창의력이 자꾸 머리에서 일상생활에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생각하기를 요걸 말이야. 이스라엘 정부에다가 의뢰를 해서 좀 협조도 받고 돈도 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 에이 그러면 한번 말이나 해보자. 그래서 외무성에 갔어. 외무성에 가서 이런 영화를 만든다고 하는데 도움받을려고 하려면 누굴까? 해서 경비실에 가서 물었더니, 무슨무슨해서 내가 Information이나 Culture, Culture에 있다 그래. 그래서 그 국장을 만날 수 있는냐? 만날 수 있다고, 아니 만날 수 있는가 전화걸어 본다고 그래요. 한국에서 온 사람인데, 외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 국장이 만나주더라구요. 만나가지고 내가 그런 설명을 했어요. 내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렇게 할려고 했다. 좋게 설득을, 설득력이 있는지, 설득을 했어요. 설득하니까 그사람이 돈 달라고 하거나 이런 소리는 없고, 외교관들은 무슨 말을 하면은요 다 예찬을 해준다구요. 외교관들은 무조건, 어느나라 외교관을 만나거나 만나면은 원더풀, 원더풀 그래요. 원더풀 아이디어, 브라이트 아이디어 막 이래요. 그래서 다 그렇게 설명을 하고 지금 내가 한 얘기가 영화를 만드는데, 동전의 양면같아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교육을 시키고 소개하고 이런것이지만 뒤집어 놓고 보면 당신네 나라 선전이다. 그랬더니, 아 그렇다고. 그선전 중에 당신네 나라 국립영화제에서 만든것보다 내가 만든 것이 우리나라 사람한텐 더 설득력있고 더 그렇다 그랬더니, 아 그렇다 이거요. 그러니 돈을 좀 보태라. 그랬더니, 안색이 싹 변해. 국가예산이라는 것은, 국가 돈이라는 것은, 예산을 세워서 예산에 의해서 집행하지 어떻게 할아버지한테 손자가 와서 용돈달란다고 해서 썩 내주듯이, 그거 당신 알잖냐고 상식인데 그런 소리를 하냐고 해서, 이제까지 원더풀, 원더풀 당신 몇번이나 했느냐. 원더풀 아이디어이면 거기에 따르는 돈이 나와야지. 그러기는 한데 예산이 있어야 한다 뭐라고하니, 정 그러면은 당신네 나라 문화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와라 이거요. 이런 영화를 류태영이가 만들텐데 지원해 주십시오. 우리나라에서 추천해 줄게 뭐요. 나같은 시커먼 놈한테 누가 추천해줘요. 영화 만들어 본 일도 없고 시나리오도 써 본일도 없는 놈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그건 안되고 이 즉석에서. 안된대. 안색이 싹 변해 안된다고 얘기 그만 끝났다 이거야. 그러면 내가 당신 예산이 없다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부처에는 예비비라고 하는 것도 있고, 정책자금도 있는 걸로 안다. 그걸로 대주면 되는데 왜 그러냐? 아 그거 내마음대로 못한다 이거야. 아 그러면 내가 장관을 만나겠다. 그랬더니, 왜 장관을 만나냐? 아 당신힘으로 안된다고 하니까 정책자금을 쓸려면 장관한테 얘기해야 한다. 내가 워낙 강한 신념과 눈빛으로 꼭 할라고 하니까, 이사람이 나중에 그래요. 꼭 장관을 만날 것 같애. 어떤 방법으로 든지 저사람이 만날 것 같더래요. 내 눈빛에서. 그러니, 이 국장이 보고도 안했는데 국장한테 얘기도 안되서 장관한테 왔다고 내가 그럴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한테 사정을 해요. 그때는 내가 먼저 보고를 하고, 그다음에 만나라고. 당신이 보고를 하는데 어떤 시커먼 놈이 안될 이런 요구를 했는데, 이따와서 얘기하면 안된다고 하쇼. 이런 보고 할라 그러냐고 그러면 내 안하겠다. 그랬더니, 설득을 했더니, 절대 그렇지 않고 긍정적으로 내가 너한테 칭찬했던 것처럼 원더풀 아이디어니까 하겠다. 그러면 얼마나? 일주일후에 만나자고. 내가 넉넉잡아 여드레 후에 찾아갔더니, 입이 함박만해갖고 내가 너한테 감동을 받아서 장관님한테 얘기했더니, 장관께서 3천달러를 예산을 세워줬다. 이십년전 3천달러는 큰돈입니다. 그러면서 수표를 가져왔어요. 정부싸인한, 재무관이 싸인한 3천달러를 영수증 쓰고 가져 가라는 거요. 그러면서 촬영사는 언제 오냐? 그래요. 그래서 촬영은 내가 할까 한다고. 몇 년이나 촬영을 해봤냐? 그래서, 한 번도 안했다. 그러니 안색이 싹 변해요 그때. 그러더니, 이사람이 난감한가봐. 볼펜을 갖다가 이러고 있더라구. 요러구 한참 있더니, 됐다고 당신의 기개와 당신의 의지와 틀림없이 해낼 사람으로 믿으니 국립영화제작소에 촬영사와 촬영도를 촬영기와 함께 너한테 붙여줄테니 너가 감독만 해라. 그래서 받았지. 고놈만 가지고 안된다. 여기 시나리오 내용이 한국에서 돈 도와주는 사람을, 그사람을 불러와야 돈을 내놓을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때만해도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여권내서 외국가기가 아주 힘들대요. 그래서 이사람을 불러와야 얘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부간에는 내보내는 법도 없고 공직자도 부부간에 여권있는 사람도 남편 나갈때는 부인여권을 맡겨놔야 나갔어요. 그때는 그러던 시절이요. 그러니 장관께서 초청을 해야 온다. 외무부장관이 뭐 낫다고 초청하겠어요? 당신 3천달러나 줬고 이걸 이룰려면은 해내야 한다. 무슨 초청장이냐? 미리 딱 써놓고 갔지요. 딱 써서 이런거다. 읽어보니까 괜찮거든. 비서한테 그냥 외무성 스테이셔날이라고 써가지고 당신이 포더 미니스트, 장관을 대신해서 당신 싸인하면 된다. 그러니까 보고도 안하고 그 자리에서 싸인을 해주더라구요. 고놈을 보내니까 두사람이 외무성공식 초청장을 받았다해서 여권 내갖고 오더라구요. 오니까 돈을 얼마든지 낸다는 거에요. 기분이 좋아서. 그래서 영화를 촬영했어요. 촬영하는데, 촬영할때는 먼저 나올 장면, 장소에 따라 하기 때문에 스토리상에 먼저 나올 것을 나중에 찍고, 나중에 나올 것을 먼저도 찍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잔뜩 찍어서 나중에 편집을 해야돼요. 편집을 하는데, 내가 편집기도 없고 모르잖아요? 그래서 소개해주더라구요. 편집전문회사가 있다고. 가서 물어봤더니 피트당 얼마, 초당 얼마라 해서, 아니 분당으로 해서 52분 내지 1시간 짜리라고 했더니, 아휴 5만달러를 내라고 그러더라구요. 아니 외무성에서 받은 돈이 3천달러인데 5만달러를 편집비로 주면 되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다음에 탁 막히잖아요. 매사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한 얘기를 여러분이 한일과 꼭 비춰보세요. 딱 막혀. 하나 산넘어 산이라고. 하나면 딱 막히는데 이거 어떡해?그래서 내가 이렇게 있다가 편집하는 기술을 배울려면은 하루에 얼마를 주면 되느냐고 그랬더니, 그때 돈으로 백달러. 백달러면 큰 돈이에요. 그때 히브리대학 1년 등록금이 백오십달러에요. 백달러라고 그러더라구요. 백달러 줄테니 유능한 교사를 날주라. 그리고 편집기계를 사용하는데 얼마냐? 그랬더니, 한시간짜리 하루 얼마얼마한다고 3천달러가지고 조금만 주면 되거든. 2백달러를 주고 이틀동안 열심히 배웠더니, 편집을 내가 다했어요. 그래서는 편집실을 빌려가지고 제가 편집을 다 했어요. 그래갔구는 내가 전부 내거티브 흑백으로 연습필름을 만들어가지고 그다음에 소리를 넣어요. 자동차가 지나가면 자동차소리, 물이 흐르면 물소리가 나와야 되고, 소가 울면 움메 소리도 집어 넣어야 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그것도 전문으로 소리자료들만 많이 가지고 있어서 또 해주는 회사가 있어요. 거기가서 물어봤더니, 여기도 또 한시간짜리면 만달러 어쩌구 이렇고 앉았더라구. 그래서 이것도 기술 좀 나한테 가르쳐서 이걸 또 배웠어요. 백 달러에. 그래서 혼자 다 해버렸어요. 옛날 시골에 가면 왜 북치고 장구치고 꽹꽈리치는 약장사 있잖아요. 그거 똑같애. 내가 편집, 기획, 감독, 출연, 녹음, 해설, 음악 다 해버렸거든. 그래서 만들어서 영화를 두편을 만들었는데, 75년도에 우리나라에 들여보냈어요. 내가 일시귀국했을 때, 우리나라 국방부에서 전국에서 150벌을 복사했습니다. 교육용으로. 안기부에서 3벌을 복사해갔고, 그래가지고는 전국 교육용으로 엄청나게 돌렸어요. 보는 사람마다 감명을 받았다. 이거에요. 한때는 전국의 기업인들, 재벌 총수들을 정신문화연구원에다가 전두환대통령 시절에 교육을 할 때도 그걸 교재로 써서 그걸 돌려줬다 그러더라구요. 이거 조그만 하나하나의 예이지만은 생각한번 해보세요. 가능한 얘기인지. 제가 아까 창립자님께서 제가 지내온 얘기를 하라고 개인적으로도 어저께 전화를 걸어서도 말씀하시고 그럽디다만은 제가 자라온 얘기, 대개 여기 들으신 분이 많은 줄 압니다. 요약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가난한 집에서 나가지고, 학교를 못다니고 시골집에서 골머슴을 지냈습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겨우 졸업하고, 남의 집 소, 남의 집 논, 남의 집 밭, 남의 집일만 하고, 돈한푼 안받고 거기서 밥만 얻어먹고 그렇게 지냈어요. 몇 년을 그랬어요. 여기 앉아 계신 분이 우선 비교할 때 나는 중학교를 제대로 졸업했는데, 중학교도 못 졸업한 것이 저기에 올라갔다고 그럴난가 모르겠습니다만은 사실 그래요. 그런데 국민학교 졸업하던 첫 여름에 산에가서 보리풀이라고 퇴비용 풀을, 억새풀이라 할지, 잔뜩 베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짊어지고 내려오는데, 나하고 함께 국민학교 졸업한 학생이 중학교에 갔어. 중학생 복을 입고, 중학교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고 고개를 넘어서 집으로 다니러 오는 모습을 봤어요. 아마 개교기념일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무슨날이 됐는지, 그 아이를 보는 순간에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는 왜 중학교 못갔냐? 6개년 동안 개근상 타고, 6개년 우등상 타고, 반장도 몇번하고 했는데 나는 못갔다 이거에요. 그 애가 천사같이 보이더라구. 단 몇 달동안이라도 중학생이 되어 봤으면 한이 없겠더라구요. 국민학교 5학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새벽에 교회나가서 기도하는 그런 생활을 쭉 해서 오늘도 어김없이 5시에 교회가서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예배보고 그리고 집에서 나왔습니다만은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때 내가 믿는 하느님께 신에게 서원을 올렸어요. 내 일생동안 공부를 끝까지 한 번 하겠다. 끝이 어디인지도 몰라. 하여튼 공부라면은 내가 끝까지 한 번 하겠다 이거에요. 하느님이 도와주시면 내 못할 것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하고 확신을 가졌던들 현실은 현실이요 새벽이 온 뒤 먼동이 틀 때 바지기 짊어지고 나가서 풀을 베어와야 돼. 풀 한바지기 베어오고 그다음 밥먹고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는 가마솥에다 소죽을, 옛날에는 소를 화식시켰어요. 풀을 작두에다 썰어가지고 삶아가지고 구유에다가 구수에다가 주고 마당 쓸고 나면은 온몸이 녹초가 되어서 착 가라앉히잖아요. 그런데 어떡하란말이야. 그런데 마음속에 내가 나한테 내 내면의 내가 외면의 나한테 명령하기를,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기도하는 가운데 현존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라. 네게 주어진 여건에서 해야지, 없는 여건을 바라보고, 왜 부모는, 나는 돈이 없는가? 정부는 나같은 사람한테 왜 장학금을 안주는가? 왜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가? 이러지를 말고 네게 현재 오전 있으면 오전, 일원있으면 일원, 니 탤런트, 니 능력, 니 시간, 니 재능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라.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집모퉁이에 토끼 몇마리를 따로 별도로 키우는데 그거 팔아가지고요 중학교 강의록을 샀어요. 요즘 전과지도소 같은 책. 그거 사가지고 독학하는거야. 지게속에다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그랬지요. 동네 소문났어요. 자기 아들은 중학교 보내도 공부안하는데 저놈은 그냥 맨날 책만 읽고 다녀. 논두렁에 가다가도 책을 보다가 어떨때는 거꾸러져서 쓰러질때도 있고, 같이 일꾼들하고도 모 심다가도 쉴때는 나는 책을 읽는거에요. 지게속에다 책 넣어갖고요. 저녁에 잘때도 고단하지만 등잔불 켜놓고 책보고 소문이 났어요. 어떨때는 지게지고 동네를 가면은 내가 얼굴이 좀 따근따근해. 저기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욕을 할 때 나를 얘기하더라구. 이놈의 자식, 태영이나 중학교 보낼 것 같다고. 너같은 놈 중학교 보냈더니 공부도 안하고 이런다고. 이런 욕을 하면서 나를 들먹거리는 일이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한 3년 지내니까 기회가 열려요. 읍내에 중학교 생기고 거기 읍내의 유지댁에서 내 소문을 듣고 감동을 해가지고 그 사모님이 나를 만나서 테스트를 한 끝에 그 집의 가정교사로 나를 채용해 줬어요. 국민학교 2학년, 5학년 아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그래서 나이 열여덟살 때 처음으로 중학교를 갔어요. 중학교를 졸업하니 고등학교가 없어요. 있으면 그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다닐텐데. 그래서 서울에 올라와서 고학을 하는데, 6.25직후입니다. 한강 인도교가 폭격을 맞아서 폭삭 끊어져서 폭구하지 않을 때, 그때 나이 드신분 알란가, 지금 전철에 대는 철교를 침목으로 딱 갈아서 사람이 한채 거기로 걸어다녔어요. 또는 군인들이 부교, 배들을 여러개 연결시켜가지고 거기로 건너다니기도 그런던 시절에 서울에 왔어요. 와서 누가 마중하겠어요. 시골뜨기를. 그래서 영등포에서 구두닦이를 했어요. 길가에서 구두닦이를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들어갔어요. 고생은 많이 했어요. 한마디로 집에서 돈 일원 한푼 갖다가 쓸수 없기 때문에 구두닦이 한 돈으로 먹고 용돈하고 생활비하고 등록금까지 다 해야되니까 거의 굶고 지내야 돼. 신문배달 한 3년했어요. 조선일보를 했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어떨때는 빈혈증 때문에 쓰러질 때도 많고 쓰레기통에서 밥을 주워먹었어요. 여러분 인간의 밑바닥에 내려가 보셨어요? 너무너무 배가 고프니까 신갈동, 대방동 여기 배달할때인데, 싹 지나가다 보니까, 대문에다 신문을 놓고, 모퉁이에 쪽문있고, 연탄재 수북한데 이만한 밥덩어리가 있더라구요. 너무 배고파서 싹 돌아 거꾸로 와서 집으니까 연탄재 모래가 묻어. 그 아깝지 않지 뭐 다 뜯어내버려. 그러고 먹었어요. 경제적으로 돈이 없다. 자금이 없다. 나는 이런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강한 의지와 강한 마음속에 내면에 자신감을 심고 미래지향적으로 노력하면은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해결하도록 되어있어요. 내 그집 쓰레기통에서 한번, 요즘에 내 일기장을 들어보니까 있더라구요. 한번 더 먹은 기억나는데, 한번은 보니까 빵을 지금같은 곰보빵 같은 빵이요. 소보로빵. 빵을 한 스물댓개를 내버렸더라구요. 큰 박스에다 내버렸는데 보니까, 빵에 파란 곰팡이가 대여섯개씩 꽃 피었어. 파란 곰팡이가. 그런데 그중에 하나 저쪽에 있는거 보니까 빵 끝허리, 둥그런 손바닥만한 빵인데 끝허리, 여기 곰팡이가 하나가 딱 피었더라구요. 얼른 집어가지고 딱 분질러 내버리고 먹었어요. 가면서 먹으니까 맛이 매캐해. 곰팡이는 안쓸었지만 이미 간거에요. 말하자면, 아마 여기도 곰팡이가 있는가 보지 매캐하지만 너무 배고프니가 다먹었어. 그래도 배탈나는 법이 없어요. 여러분 거지 배탈났다는 소리 들어봤어요? 그게 소년시절의 제 생활입니다. 문제는 제가 빈말이 아니고 일기장에, 그때 일기장을 쭉 보니까요 매일매일 감사하면서 살았어요. 긍정적으로 살았어요. 내 인생을 비관해 본 일이 없어요. 부모를 비관해 본 일이 없어요. 그 고생하는 그 순간을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시련의 축복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나를 트레이닝시킨다. 이렇게 받아진거에요. 여러분 가끔 극기훈련시킨다고 높은 산위에다 올려놓고 나침반만 주고 놔버린다고 그래요. 일본에서 그런 훈련한다고 그래요. 아무나 합니까? 누가 돈 들여서 헬리콥터라도 실어다 높은 산에다 놓고 나침반만 주고 내려오라 그래요? 다 될만한 사람을 뽑아서 훈련시키는 것이거든. 극기훈련을 아무나 시키는 것이냐고. 그걸 인생이 살아나가는데 긍정적인 눈으로 보여요. 내가 굶고 빈혈증이 있고 이렇게 지낼망정 어떨때는 깡패한테 잡혀가지고 발길로 채여서 저 서울역앞에서 신문팔다가 그랬어요. 누구 허락받고 신문파냐? 이이고 세상에 밥도 굶으면서 신문사시오 하면서 다니는데 그걸 누구 허락받고 팔았냐? 누구 허락은 누구 허락이요 없어서 파는건데. 돈 내놓으라고 탈탈 털어서 2백원인가 3백원 얼마 동전 가져가면서 더럽게 돈도 조금 가져다닌다고 발로 톡 차는데 정강이를 차서는 어떻게나 아프던지 드러눕다 넘어지다 보니까 계단에 데굴데굴 밑에 내려간 일도 그랬어요. 여러분 그런 순간을 당했다고 지금 생각해 보세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기가 쉽죠. 내가 인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나?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이럴수가 있느냐? 그런 생각 한 번도 안해 봤어요. 내 이것을 극복해야지. 오냐, 이십년후에 보자. 나는 그 개인에 대한 원망이 아니에요. 이십년후에는 삼십년후에는 내 구두닦이 한돈을 뺏어가기 위해서 발길로 차는 사람은 저절로 없을거다. 내 그런사람이 되겠다. 강한 목표의식속에 사니까 다 해결돼요. 그런데 공부를 끝까지 한다고 그랬으니까 나는 대학도 야간대학 다녔습니다. 낮에는 맨처음에 공장 청소부로 있었어요. 그시절에 1950년대 말 공장의 청소부로 있는데, 찬물로 걸레를빨아서 손가락이 애려요. 더러운 걸레 빨다가도 손가락을 빨았어요. 입으로 호하다가 빨고 발고, 더러우면 그냥 더러운 것이 입에 묻으면 침을 모아서 뱉으고 또 빨고 그러면서 냉방에서 자는데 방에 떠다 놓은 물이 얼어서 얼음이 떠있어요. 너무 추우면 그럽니다. 새벽에 1시인가 2시인가 잠이 깨었는데, 속이 떨려 껍데기 추운 것은 이미 감각이 없고, 그래서 막 뛰었어요. 방안에서 막 뺑뺑 돌고 뛰고 그러면서 극복했어요. 그러나 마음속에 미래에 대한 꿈은 한 번도 어겨본 일이 없어요. 내 극복한다 이시련의 긴 터널이 잘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소망을 내게 주시옵소서. 내가 믿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그속에서 용기와 소망과 의지를 다시 찾고, 다시 연속해서 나갈 수가 있었어요. 공부를 끝까지 하기로 했는데 내 구두닦이 하던 시절에 외국에 유학을 가기로 생각했어요. 영등포의 미군부대 주변에서 구두를 닦다보니까, 하우스보이로 취직을 한다고 무엇을 하느냐? 유학가기 위해서. 내 유학이란 말을 처음 들었어요. 시골에서는 산골에서는 유학갔다온 사람이나 갈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유학이라는 단어가 사람대화 가운데 오르내르지를 않아. 그런데 유학이라고, 유학이 뭣이냐? 세계적인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거다 이거요. 주로 미국가서 공부한다. 나도 육학간다 그말 듣자마자 유학가기로 결심을 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때, 구두닦이 할 때, 한 번도 포기해본 일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내 꼭 간다. 틀림없이, 그런데 대학을 졸업했지요. 어떻게? 새벽에 조용히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하는 가운데 마음속에 우러나요. 예수 안믿는 사람은 그게 무슨 말인가 모르겠지만은 성령이 감동을 하고 응답을 받는다 느낍니다. 말하자면 마음속에 우리 사회적인 용어로 말하면 마음속에 어떤 결심이 탁 와요. 문뜩하니 이런 결심이 와요. 기도를 하면은. 그런데 그 결심이 뭐냐면은 장문의 논문을 써라. 농촌에 대한 논문을 써라. 그래서 우리나라의 농촌에 여러 가지 어려운 것, 내가 체험한 것, 학문적인 것, 책도 보고 어떻게 해가지고 논문을 장면장면 논문을 썼어요. 영어로 번역했어요. 그다음에 또 편지를 썼어요. 논문속에는 내 사상과 의지가 담겼고, 뭐든 대책이 담겼거든. 내 이런 사상과 이런 의지와 이런 것을 가진 내가 세계적인 복지농업국가인 덴마크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면은 우리나라 농촌을 위해서 참일을 하겠다. 이런거에요. 그리고 또 편지를 써서 그다음에 영어로 번역했지요. 지금도 그 편지가 있지만은 영어도 시원치 않아요. 관계대명사, 전치사 제대로 잘못 써서 꼭 닭고기로 말한다면 터러기 드문드문 붙인 닭고기 같애. 그러나 무슨 소리인지는 알게 썼어요. 그래가지고 누구한테 보내요? 쓰긴 썼는데 지도교수가 쓰라고 하면 선생님이 썼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교정을 봐 달라고 하든지, 지가 저혼자 기도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할거에요? 우리나라에 덴마크 대사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덴마크에 우리나라 대사관도 없고 그 시절에, 60년대 초에. 그런 가운데에 자꾸 골똘히 생각하면은 앞이 깜깜한 가운데 반드시 길이 비칩니다. 반드시 빛이 있어요. 뭐인고하니, 누구한테 이 편지를 부칠지 모르는 바에는 그나라에서 제일 늦은 사람한테서 부치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아무도 그나라 모르는 바에는 제일 높은 사람한테 부친다.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군줄 알아야지. 도서관에 가서 백과사전을 펴보니까 프레드리히 9세가 그나라 임금님이다 라고 써있더라구요. 지금현재. 임금님이면 제일 높으겠지 편지 서두에다가 프레드리히 9세 임금님 귀하 물론 히즈~ 뭐 영문격식을 따져서 썼어요. 신나게, 마음속에 막 흥분돼요. 내가 임금님한테 부친다고 봉투를 만들어서 타자기도 없으니 손으로 인쇄찍고 몇날을 만들어서 두툼한 것을 집어 넣어서 만들어가지고 주소를 쓰는데 왼쪽 구석지 저위에다가 프럼 류태영, 주소쓰고 코리아, 그리고 오른쪽 중간쯤 거기에다 투 프레드리히 9세 임금님 귀하 손에 딱 멈춘 것이 주소를 알수가 있어야지. 백과사전에도 봐도 임금님 주소가 없드라고요. 이게 편지 못 부치는 거지, 또 그 이튿날 새벽에 하느님께 가서 기도를 드리고 하는 가운데 마음속에 다 기도하는 가운데, 걱정말아라 그나라 편지 배달부가 임금님 어디사는지 모를까봐 그러느냐? 그런 응답을 받았어요. 그래서 임금님은 수도에 살겠지. 코펜하겐 덴마크. 임금님 이름에다가 코펜하겐 덴마크를 써. 그러니 그 편지가 들어가겠어요? 시골서 부치니까 우체국 아가씨가 우체국 직원이 아마 어디가고, 아마 식모아가씨가 와서 보는지, 꼬브랑 꼬브랑 써졌으니까 도장을 팡팡 박고 받드라고요. 서울서는 안받아요. 주소없는 편지를 누가 받아요? 그 편지가 임금님한테 들어가겠어요? 원칙적으로 안됩니다. 국가원수에게 내는 편지는 우리나라에서 국가원수가 내든지, 외교차례를 거쳐서 내든지 그래야지요. 그런데 13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응어리진 이 마음에 기가 나온거에요. 신앙적으로 말하면은 하느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것이에요. 임금이 감동을 해서 국빈으로 나를 초청해줘서 덴마크에 유학을 갔어요. 맨처음에 온 편지는 뭐라고 했는고 하니, 임금님 보좌관, 프레드리히 9세 임금님 보좌관이 싸인을 한 편지인데 딱 영어로 두줄이더라구. 왕실에서 왔는데, 당신의 편지를 임금님이 보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행정부에 이첩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입헌군주국으로 임금님은 권리가 하나도 없는 양반이더라구요. 요즘 말하면은 부전지 하나 써서 외무성 장학금 관리국에다 주었겠지요. 그래서 갔다말이요.
‘뇌내혁명’을 통한 관리능력 향상기법 Ⅱ
나중에 얼마기다리고 있으니까 외무성의 차관보가 사인을 해서 편지가 왔는데 ‘open scholorship' 세계인의 scholorship이 없습니다. 생략하고 본문을 말하면은 내가 원하는 기간,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책임을 지기로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기간 3년, 5년, 10년 마음대로 쓰라 이거야, 내가 원하는 장소 서울, 부산, 대구, 서울대, 고려대, 건국대 마음대로 쓰라 이거야, 내가 원하는 분야 정치학, 경제학, 농학 마음대로 쓰라 이거야 백지수표를 받은 것나 같아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그랬냐면은 당신네 대학 내가 이름도 모르고 학제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니 나는 당신네 나라말을 배울 수 있는 랭귀지 인텐시브 코스에 넣어 주면은 말 배운다음에 다음 갈 곳을 정하겠습니다. 라고 편지를 했더니 왕복 비행기표가 오더라구요. 그래서 갔어요. 신데렐라 같은 애기지요? 그런 일들은 한두건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지 한 번 거기에 자기 마음속에 할 수 있다 해내야 한다 하고야 만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다면 그것이 실력이 됩니다. 실력이 되면 거기에 용기가 따라 붙습니다.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용기가 따라 붙어요. 그다음에는 부단한 노력이 부수됩니다. 백번 넘어지면 백한번쩨 일어나는 그런 노력의 그 3가지가 결집되어서 어떤 프로젝트 어떤 과업 달라들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제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없다는 이런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은 나는 불가능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 쓸 수 있는 순간은 내가 죽어서 관속에 들어갈 때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는 순간에 아하 그일이 내게서는 불가능했구나 이렇게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이렇게 하고 내생활표어를 그렇게 썼어요 우리는 흔히 마땅히 해야 할 일 하고야 마는 그일에 대해서 미리 불가능하다는 조건들을 미리 늘어놔요 돈이 없어서 안된다 인력이 없어서 안된다 경쟁이 있어서 안된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 니가 해봐라 이런 마음이 작은 일에서부터 작용을 합니다. 그렇게 작은 경우에 시작하면 모든일이 그렇습니다. 굼벵이처럼 둥글둥글해도 잘되면 넘어가는 그런 일이나 하지 스스로 무슨일을 할려는 의욕이 상실되고 자꾸 죽게 됩니다. 한 번 자기자신을 테스트하고 성취동기를 갖게된다면 어떤일을 부딪치더라도 해내게 됩니다. 요즘에는 그런 연구가 많습니다. 옛날 D.카네기가 자기 성공의 비결이라고 해서 책을 써내기도 하고 미국에서도 요즘 그런 책들을 많이 냅니다. 많이 내는 가운데 요즘에 나오는 책중에 보니까 그래요 긍정적을 삶을 가져라 자고 일어나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 것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기분 안좋은 것을 생각하지 말 것, 기분좋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된다고 생각하고 밝은 생각을 되도록 이면 그런 안건들을 머리에 떠오르고 살아라 이거야 그러면 항상 머리가 살아서 싱싱하다 이거야 그렇지 않으면은 오염된 물처럼 냄새나는 썩은 물처럼 고기가 살수 없고 모든 생물의 세포가 죽어나가는 물이 되는 것처럼 뇌가 작용을 못한다 이거야. 어떤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은 눈 뜨자 마자 내가 신문배달 할 때 합숙소 있을 때 눈뜨자 마자 이놈의 새끼 욕부터 나와 불만이 가득차서 아무개는 죽을놈의 새끼 아무개는 되져버릴 새끼 욕을 하고 불만이야 전부가 하루종일 밸밸꿰어 누가 쳐다보면 니가 왜이렇게 나를 꼬나부냐 너는 왜 그렇게 말을 하냐 하여튼 매사에 불만이고 매사에 부정적이야 이건 극단적인 예이고요 일반적인 우리가 사는데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밝은 마음으로 여기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있을줄 압니다만은 새벽기도에 나가보세요 새벽에 가서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하면은 그게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입니다. 생활패턴이 달라지고 머리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달라져요 예수 안믿는 사람 금방 예수믿으면 좋지만 안믿는다고 하더라도 혼자 묵상을 하시라고요 새벽에 일어나서 긍정적인 것을 많이 생각해 보시라고요 회사를 위해서 자기가 맡는 과업에 대해서 된다 할 수 있다 된다 하고야 만다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을 매일 하루에 1,2분 씩 하게 되면은 그사람의 머리는 창의력의 머리로 바꿔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보세요 실제로 그럽니다. 자기에 대해서 자학하지 않습니다. 주위의 환경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국가에 대해서 민족에 대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결해 나갈려고 합니다. 보세요 내가 덴마크에서 공부할 때 또하나 덴마크가 조그만 그때보니까 4백50만명 인구가 지금은 5백만명 됩니다 땅넓이는 우리나라의 전라남북도 만해요 물론 평작지이기 때문에 경작지는 상당히 많지요 거기서 공부를 하는데 한 번은 생각하기를 유럽 여러나라를 다녀보았으면 좋겠는데 돈이 있나요 그 장학금 주는 생홥비 주는 돈으로 그렇게는 안되거든 그래서 한 번 내 유럽을 여행해야 되겠다. 나 학생이요 그때 그래서는 누구한테 찾아갔나 하면은 장학금을 주는 국장이 있어요 그게 해외협력국장이 나에게 늘 돈을 주었어요 그사람한테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이런얘기 저런얘기 하던 끝에 내가 그랬어요 당신네 나라가 어째서 나한테 생활비 용돈을 다주고 편의를 봐주느냐 그러니 당신이 임금님한테 편지를 하고 임금님이 또 외무성에 외무부장관한테 부전지를 보내고 그래서 어떤 케이스에 넣어줬다는 거에요 어떤 케이스냐고 그랬더니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써 발전도상국가를 국민소득의 1퍼센트를 갔다가 넣어서 지원을 하는 결정에 참여하기로했다 이거에요 발전도상국을 지원하다보니까 그나라에 미개한 나라에 사람을 데려다가 교육을 시켜서 인물을 만들어서 보내는 것도 지원한 것중의 큰 것중의 하나더라 요렇게 이야기하더라구 옳다 잘됐다 고말을 딱 물어가지고 그러면은 내가 당신네 나라에서만 공부를 하고 우리나라에 가서 일하는 것 하고 유럽 여러나라 하고 문화시찰을 다 비교시찰을 하고 가서 하는 것하고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이겠느냐 하니 그거야 다 여러 나라를 다니고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은 나를 방학때마다 유럽에다 보내서 교육을 좀 시켜라 그 사람 안색이 싹 변해 당신은 어떻게 임금님 해서 외무성에다 정책자금으로 해서 예산을 세워가지고 지금 어떻게 매월 돈을 얼마씩 주는데 그거 어떻게 금방 여행을 가느냐 당신이 좋다고 않했는냐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은 예산이 없다 이거에요 이게 아 투자효율을 높일려면은 정책자금이 되었든 비자금이 되었든 써야 할것이 아니겠는가 하니까 안된데 우리는 예산이 없어서 안된다고 정책자금은 누가 쓰느냐고 그것은 장관이 한다고 그러면 내가 장관을 만난다고 그때 내가 신문에 대서특필이 됐어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신문이 막나고 그때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작가의 남편이 교외부 장관이었어요 필더슨이라고 그 양반이 감동을 해서 저를 초청을 해서 그집에 가서 한1주일 머물기도 하고 그것이 또 신문에 나기도 그랬거든. 다 읽었어 그사람은 장학금도 주고 나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도 하고 그랬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장관을 좀 만나야 겠다. 너 알다시피 교외부장관 그집에서 묵었고 친하니까 교외부장관한테 부탁해서 외무부장관을 만나서 당신이 원더풀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까는 좀 특별정치자금을 대라고 하니 그사람이 벌벌 떨면서 어 안된데 자기가 먼저 말하겠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더니 열흘후에 갔더니 그사람이 딱 말하기를 2만 달러 특별 예산을 세웠다 60년대 얘기니까 그래서 유럽 여름방학 2번을 이용해서 유럽을 가는데 그 나라에 있는 덴마크 대사관에 농무관 농무관이 있드만요 농무관이 공항에서 나를 마중해 가지고 벤츠에다 태우고 다니면서 싹 구경을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가락동 시장, 농업진흥청, 농수산부, 시범농장 다 다녔어요 2달동안 일류호텔에서 자고 대사관 만찬을 베풀어주고 그러면 농과대학 학장이 만찬을 베풀어주고 세상에 그냥 벤츠타고 미꾸라지 용된 걸보고 보고 또 보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가능한가 염치도 없지 장학금 주어서 공부시키고 마는데 유럽을 다 2달을 다녔어요 유럽나라 샅샅이 다녀요 가는김에 농업만 보겠어요 문화시찰 여러가지 관광지도 다니고 다 다녔지 그런 일들이 당하면은 하게 되있어요 말배우는 것도 여러분도 요즘에 인터넷이나 세계화 국제화다 해서 말 배운는 것도 그렇지만 말 배우는 것도 그랬어요 덴마크에 가기는 갔어요 무슨 실력이 있어서 간것도 아니고 시험봐서 간것도 아니고 돈이 있어서 간것도 아니고 성적이 좋아서 간것도 아니야 좋게 말하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서 갔고 나쁘게 말하면 운수로 그냥 어떻게 신데렐라처럼 불려서 갔다 말이야 여러분 하나 딱 불러다 덴마크 갔다 놨다고 합시다 내 가기 전까지는 외국에 한 번 안갔단 말이야 일본어를 떠듬떠듬 일본시대에 국민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국민학교 4학년때까지는 한글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 일정때 제 나이또래는 다그래요 그때 기초를 해가지고 공부를 할려니까 자연히 일본책을 보고 하니까 일본책 읽는 것 신문 보는 것 비교적 자유스럽게 한자 발음이 틀리기는 하지만 읽고 그다음 일본에 촌에 가서 보면은 말 커뮤니케이션이 다되고 그래요 영어는 또 교회에서 선교사하고 그러니까 불편이 없었어 코펜하겐에 딱 내리니까 아 사람들이 덴마크마을 쓰는데 그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꿍얼꿍얼 중얼중얼 그러는데 저것도 말이라고 하는가 말같지를 않아요 꼭 울타리에 있는 새떼들이 지저귀는 소리나 똑같애 여러분 지금 나같이 한번 느껴 보시라고요 외무성에서 의정실에서 차를 가지고 공항에 나를 마중나와서 학교에다 나를 데려다 주더라구요 인계를 해줘 기숙사를 특별기숙사를 줘서 카페트가 딸린 기숙사에 짐을 풀고 나니까 겁이 탁 나는거에요 여기까지 와서 돈도주고 입학도 시켜주고 다 되었다 그랬단 말이야 그다음 내몫이야 내몫이 뭐야 말을 언제 배우냐 이거야 내가 덴마크말을 배우러 왔냐 이말이야 덴마크 농촌사회학을 배우러 왔는데 말을 어떻게 배우냐 이거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하겠어요 영어처럼 10년? 10년동안 말만 배우고 앉았어요? 그말 배워서 뭐할거에요? 나는 조용히 묵상하고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드렸어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이 차분한 가운데 이말 배우는데 기법을 내가 기도를 하는 가운데 응답을 받은거에요 걱정말아라 사람들이 쓰는 말들이 몇마디씩 되는냐 헤아려 봐라 이런 응답을 받았어요 여러분 오늘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 한 번 테스트 해보세요 여러분 일상 용어쓰는 것을 한국말로 문장을 만들어 보라고 나는 백문장을 만들어 보니까 더 못 만들겠어요 실지로 우리가 쓰는 말이 많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한 오백말쯤 되겠습니다. 그러면 되지 않느냐 아무리 새소리 같은 소리라도 사람이 내는 소리 오백마디만 니가 흉내만 내면은 말 다하지 않느냐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어요 땅가마에다 찢어진 구름사이로 햇빛이 싹 비추듯이 서광이 탁 비추더라구요 영어로 말하면 delight 기분이 너무 좋더라구요 그러다가 한 5분이 지나니까 언제 오백마디 다 배우느냐 그다음 내가 너한테 질문하는 거야 하루에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고 말만 배우면 몇마디를 배울 수 있느냐 내 영어로 계산해봤어요 I'm a boy. You are a girl. We are a student 이런식으로 한 열마디는 하겠더라구요 그것만 하는 동시에는 5항까지 들어가 있으니까 석달이면 끝나겠다 열마디씩 석달이면 구백말이요 구백말 알면 그당시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에서 에누리하면 전부 반은 깍았거든 구백말 세워놓고 반을 에누리 하더라도 말은 되지 않느냐 하는 거에요 자신감이 생겨 그때 노트를 썰어가지고 요만한 수첩을 만들었어요 그래가지고 날이 밝기가 무섭게 덴마크 학생에게 가서 말을 받아 쓴거에요 열말을 일상용어 쓰는 것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요 한 사백마디밖에 안됩니다 여러분 외국사람 만나서 대화할 때 100센텐스만 알면은 한 30 40분 얘기 다 합니다. 나 이스라엘 가서도 이스라엘말도 다 그렇게 배웠어요. 이스라엘은 왜 갔냐? 덴마크에서 공부하다보니까 그60년대 초에 우리나라 얼마나 어렵게 살았습니까? 근데 그나라는 농촌에 가니까 자가용 승용차가 한 대도 없는 집은 한 집도 없어 아까 등록금은 하나도 않내 너무나 차이가 나는 거에요 이나라 사회제도나 Institution을 받아 우리나라에 써먹을 게 없더라구요 마치 열깊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100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집에 가봐요 그집에 옷걸이 뭐 거울거는거 신장 하나도 본받아서 써먹을 것이 없어 거울 거저 주어도 걸데도 없어 그집 가면은 마찬 가지로 덴마크의 농업제도, 무슨 소비자 연맹 이것을 갖다가 써먹을 수가 없는 시대야 백년전에 그나라의 농촌에 일어나는 국민운동사를 배웠어요 그러니까 현실감각이 없는거야 그때 내 느끼기를 좀 현장감이 나는 나라가 없느냐 지금 먼지가 바싹 일어나면서 일어나는 나라가 없느냐 들어보니까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에 유학가야 겠다 임금님 아들이야 뭐야 이게 십원한푼 없는 것이 이스라엘에 가야겠다 그랬어 내가 여러분 그게 이루어져요 그냥 농담으로 가야겠다 가야겠다 그것은 소용없어 정말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에서 결심을 하고 확신을 갖고 신앙으로 내가 믿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가면은요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내가 얼마지난뒤에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편지를 써가지고 임금님한테 써서 재미 본 경험도 있겠다 그나라는 임금님이 없더라구요 대통령입니다. 거기는 또 내각제요 대통령중심제가 아니고 하여튼 대통령한테 편지를 내고 논문을 내고 지내온 이야기와 덴마크에서 공부한 것과 왜 이스라엘을 갈려고 하는 목적과 내역과 자세히 써다구 영어로 써서 부쳤다구 부쳤는데 대통령 보좌관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대통령께서 당신의 글을 읽고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 노력하십시오 막연하지요 덴마크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그러고 석달있으니까 코펜하겐에 있는 덴마크 대사관에서 편지가 왔어 그 대사가 나좀 만나자 이거야 그래서 갔더니 대사는 마침 본국에 가고 총령사가 대신 나를 만나더라구요 이렇게 서류를 보더니 너를 대사님이 만날려고 하는 목적은 본국에서 훈령이 왔다는 거에요 언제 이스라엘을 올 수 있는가 온 다고 하는 날짜에 맞추어서 비행기표를 대사관에서 지급하라고 비행기표가 왔대요 그래서 왕복비행기표 생활비 용돈 정부에서 다부담한다고 마음대로 와서 공부하라 이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안가요? 그래서 이스라엘에 갔어요 이스라엘에 가서 말배우는 것도 그렇게 했어요 수첩당장 만들어서 이스라엘은 또 배우기 힘들더라구요 덴마크말은 알파벳이 영어 알파벳하고 똑같아요 틀린 것이 세자 있어요 에이자 위에다 동그라미 치는 것 에이자와 이자가 등짝이 붙은 것 오자가 비뚤어진 것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예 글자부터 틀려 꼬부랑 꼬부랑 막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내려 가는데 한참 보니까 이게 글자인가 뭐인가 본다 이거야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 한자를 보고는 아이구 세밀하게 도안도 보통 어려운게 아닌데 그걸 다보냐 이거야 이사람들은 글자를 도안이라고 하더라구 이게 그말을 듣고 보니까 내가 한자를 읽고 있는게 신기한거야 외국사람이 볼때는 도안이래 그 글자하나하나가 이게 하여튼 이스라엘말도 수첩 만들어 가지고 딱 석달에 끝내버렸어요 덴마크말도 석달에 끝내고 여기도 석달에 다시 전문용어 대학에서 강의 받을려면은 일상용어 가지고 안거든요 전문용어 석달동안 더 배우고 인터발 시간이 있어서 칠개월만에 대학원 입학시험을 이스라엘말로 봤어요 그래서 들어가지고 수석을 했어요 영어로 해석된 것을 보니까 무슨무슨 주제로 뭐 위원회를 통과하다 위드 디스팅션을 써주더라구요 들어보니까 성적이 제가 제일 우위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국립대학에 교수로 초빙을 해주어서 동양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말로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서 몇 년 가르치다가 돌아왔습니다만은 여러분 조그만한 내 이야기입니다. 여기 한 대목 한 대목에서 보면 전부가 불가능 합니다. 유학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말배우는 것도 불가능해요 대학을 다니는 것도 불가능 고등학교 가는 것도 불가능해요 중학교 다닌 것도 불가능해요 전부 불가능한 거야 여러분 주변에 불가능이 얼마나 많은줄 아세요? 불가능을 한 번 찾아보세요 모두가 불가능해요 전부 뒤집어 보세요 가능하다고 무조건 만용을 부려서 이세상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틀린 것이지요 자기 세상이 사상이 옳고 가야만 하고 옳고 꼭 해야할 일일때에는 거기에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이런 자세를 가지고 나가면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서있는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이마음과 마음 지금 내가 말하는 것도 내가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하는 텍스트가 그속에 있습니다. 웃기도 하고 내가 재미있는 얘기도 했지만은 그 텍스트를 정말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중에는 있습니다. 이중에는 안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받아들이는 사람한테는 류태영교수 웃기면서 말 잘한다 그걸로 끝.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인다면은 반드시 작용합니다. 이게. 나는 내가 가르치는 제자중에서 그런 작용하는 사람 많이 봤어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한 5년전에 농과대학에 들어온 여학생이 1학기가 끝나니까 나한테 면담신청을 했어요 면담신청을 해서 와서 한다는 얘기가 교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뭣이냐 무슨 문제가 있느냐 그랬더니 나는 농업에 대해서 취미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아버지가 가회동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도 가회동 아주 서울토박이래요 몇대가 그래서 외할아버지도 그러고 아버지도 그래서 농촌에 고향이 없어서 추석이라면 농촌에 간다고 하는데 농촌에 가본일도 없고 갈일도 없고 친척도 없고 그런데 어떻게 농과대학에 들어왔느냐 제가 들어올려고 해서 들어왔습니까? 수능시험을 봐서 보니까 점수가 모자라는데 건국대학교 농과대학 이정도면 가겠다 여기는 갈 수 있겠다 그것도 안내고 시골에서 학교 다니는 것보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것이 더 낫고 그래서 농과대학이라도 졸업해서 시집이라도 가야 될거 아니냐? 그래서 냈대요 내니까 붙었대요 한학기 다니면서 공부하면서 보니까 재미가 없는거요 그래서 상담을 하는거요 교양과목 한 과목을 나한테 들었는데 저 선생한테 상담을 하면 좋겠다는 인상이 들더래요. 아주 그냥 친철한 시골에는 안 살지만 시골아저씨 같이 생각이 들어래. 걱정말아라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 그러니 깜짝 놀래요 다른 선생같으면 공부하기 싫다하면 아 그러면 되냐 부모를 생각해서 열심히 해야지 억지도라도 해야지 그런데 내가 하지말라고 하니까 어안이 벙벙해서 그러더라구요 니 마음에 안드는데 어떡하냐. 그런데 공부를 안하면은 어떻게 될까? 예. 학점미달이 되고 학사경고를 맞고 퇴학 맞을텐데 너 시집갈 때 건대중퇴 요놈하고 건대졸 어떤 것이 낫겠냐? 그거야 공부야 하든말든 속이야 있든 없든간에 졸업한 놈이 낫겠지요 그러면 열심히 하려고 말고 학사경고를 맞기도 보통이 아니다. 보통 실력갖고는 학사경고 못맞는다. 왜냐면은 결석도 계속해야지 레포트도 안내야지 시험도 안봐야지 그래야 학사경고 맞거든요. 그런데 결석한번도 안하고 열심히 나가고 시험 그냥그냥 보는대로 보고 레포트도 내는 대로 내면 절대 학사경고 안맞어요. 졸업은 하게 되있다고 그러니 그냥 재미로 다녀라. 목적이 그런데 뭐하려고 그러냐 그런다음 졸업한다음 딴데 가든지 그래라 그랬더니 이애가 나를 좋아해요 부담이 없대. 그러니까 복도에서 가끔 만나면 교수님 교수님하고 초콜렛을 하나를 줘요 한곽도 하니고 하나줘요. 어떤때는 내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오더니 꽃을 어디서 한송이를 줘요. 어디 오다가 꺾어 왔는지 꽃병에서 빼왔는지 먹는 컵에다 딱 꽂아놓고 이거 꽃 이쁜 것 보세요. 이거보고 나좀 생각해요. 그런아이요. 성격이 굉장히 밝아요. 그래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지요. 그러다가 그러다가보니까 졸업반이 되었네요. 졸업반이 되어서 2학기에 중간고사를 딱 보고 나니까 나한테 찾아와서 하는 말이 교수님 취직을 좀 시켜주세요. 그러더라구. 취직은 왜?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취직은 뭐 너는 영어취직해라. 예?영어취직이 뭐에요? 시집가는 거다. 그러더니 아이고 교수님 귀때기에 털도 안말랐는데 어떻게 시집을 가냐고. 야 너같이 공부도 안하고 시집가기 위해서 왔다갔다 하고 재미있게 그냥 학교를 다녔는데 어떻게 취직을 하냐? 공부 열심히하고 시험공부하는 애들도 추천해서 못들어 가는데. 그랬더니, 아이고 교수님 그런데 말고요. 회사의 비서실에 나 넣어주면 차 끓이고 전화받는 것은 잘하잖아요. 아 그래서 비서실에 온 사람도 시험을 보니 필기시험이라도 붙어야 얘기라도 하지. 아 그거 말고요 중소기업 조그만 회사 여기는 시험 안보고 채용하지 않아요? 그러더라구 그래그래 알아 보마. 아 어디 사흘거리 알아봤어요 그냥. 사실 알아보지도 안았다구 어떻게 알아봐. 그런 것을ㅇ 5번 6번 오더니 나중에는 뭐라하냐면 아 교수님 아는 사장한테만 부탁하지 말고 한다리 건너서 사장한테 부탁해서 그 사장이 다른 사장한테 부탁하라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 애교를 떨고 밉지 않게 찾아와요. 그런데 한 번은 5시쯤 되어서 시간이 있을 때 찾아오더라구요. 야 이리좀 앉아라 너 정말 취직하고 싶으냐 아 그러믄요. 아그러면 공부를 했어야지, 그러고 어떻게 취직할려고 그러느냐 그럼 어떡해요? 취미도 없는 학교를 다녔는데요. 그러면 다시한번 생각하자. 내인생 상담을 다시하는거요. 내 우리 학생들 상담하러 오면 꼭 이렇게 정합니다. 여러분 자녀들 상담할 때 꼭 참고로 이렇게 정하세요. 중요한 대목입니다. 니가 40살 50살 먹었을 때 무엇을 하고 싶으냐 목표의식부터 정해주어야 돼요. 애들 그냥 어디 취칙할까요. 무슨 과 갈까요. 그러면 얼른얼른 쉽게 대답하는게 아니에요 너가 생각하고 생각해서 너가 나이다 40대 50대 되었을 때 인생의 전성기라고 할 때 무얼하고 싶으냐? 그게 조건이 되고 안되고 자격이 있고말고 니 마음이 드는 것을 말해라 이거야. 대개 우리 학생들은 나한테 안생각해 봤는데요 그래요 그러면 생각해봐 생각해오라 2,3일 생각해봐서 어떤 놈은 부끄러워서 이렇게 이렇게 보면서 내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는 식으로 말해요. 대학의 총장을 한 번 하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은 그러더라구. 내가 탁 그랫어요. 할 수 있다. 니가 마음먹고 해야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정말이요? 정말이다. 그런데 총장이 될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할까? 아 부총장을 먼저 해야 총장하기가 쉽겠지요? 그러더라구. 부총장을 할려면 학장은 한 번 해야지요. 그래 학장을 할려면 처장은 한 번 해야지요. 처장을 할려면 교수가 되야지요. 교수가 될려면은 박사학위를 해야지요. 박사학위를 할려면 석사학위를 해야지요. 석사학위를 할려면 대학원에 들어가야지요. 대학원에 들어갈려면. 안색이 싹 변해 그때 어 내가 이러면 안되겠네요. 사람이 태도가 달라져버려. 그날부터 노래방 가는거 그때는 노래방도 없지만 노래방 가는거 끊고 술먹는거 끊고 딱 끊어요. 도서관에 붙어 있더라구. 되고 안되고는 또 너가 마음 먹는것과 하늘이 또 길을 열어준다. 거기다 비추고 일생을 너가 세운 목표를 향해서 달리고 달릴 때 혹 이루지 못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에 보람이 있는거다. 알겠습니다. 눈빛이 달라져버려요. 사람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버린다구. 이 아이한테도 그런식으로 상담했어요. 애는 졸업할때가 다 되었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다가 직업을 갖는데 나중에 이것저것 상담하다가 나중에 제과제빵을 했으면 좋겠다. 공부는 잘못하니까 학자계통으로는 아예 생각도 안하고 제과제빵을 했으면 좋겠다. 잘 생각했다. 지금 제과제빵이라는 것이 얼마나 변하는지 아느냐? 거기에 일인자만 되어봐라 신라호텔이나 롯테호텔에 제과제빵 일류기술자가 오백만원, 육백만원, 팔백만원 이렇게 월급을 받는다. 세계 일인자가 되어라. 그럴라면요? 그럼 내가 파리에 내가 유학을 보낼테니 프랑스에 유학을 가거라. 금방 웃어요. 예? 유학이요? 수능시험도 모자라서 공부도 못했는데 꿈에도 생각못한거에요. 지금부터다 지금부터다 그래서 세뇌교육을 시켰어요. 가슴속에 그런 마음을 꿈을 갖도록 해줬어요. 내가 이렇게 이렇게 언어도 극복했고 이렇게 해서도 세계 10대 대학, 예루살렘대학에서 3개월만에 말도 배우고 3개월 더해서 7개월만에 대학들어가서 히브리대학 역사상에 최단기간내에 석사 박사를 1등으로 한사람이 나다. 그래서 거기가서 교수를 했지 않느냐? 너도 할 수 있다. 내가 대학성적 봐라. 건국대학교 성적이 야간 다닐 때 맨날 구두닦이나 하고 장사하느라고 학교성적도 좋지 않단 말이야. 지금부터다 지금부터 탁 마음을 먹고 우리 엄마한테 물어본다. 아 그 이튿날아침 우리 엄마가 안 믿는데 나 까짓것이 무슨 놈의 유학이냐. 이거야. 유학가지 말고 어디 취직시험이나 붙어서 가지 무슨놈의 유학이냐? 전화를 딱딱 걸더니 엄마엄마 바꿔라 딱 전화바꾸니, 아이고 제 딸년을 맡겨놓고 학교를 한 번도 안갔는데요. 대학생 엄마가 어디 학교 찾아 온답니까? 그런데 우리 윤정이가 말하는데로 어디 프랑스 파리에 유학을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대학은 등록금이 한푼도 없습니다. 생활비만 조금만 대주면 되는데 먼저 말을 배워야 되는데 말 배우는 동안에는 외국사람을 대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등록금 생활비가 한 120만원 듭니다. 한달에 한 1년만 대주면 되는데 가능합니까? 1년이 아니라 얼마든지 대준다는거요. 그래서 내가 당장 편지를 내가지고 입학허가서 받고 여권내고 비자 탁 받아가지고 떠날려고 하니까 얘가 풀이 탁 죽어버려 영어를 한마디도 모르지요. 불어는 고등학교때도 불어 배운일도 없고 본일도 없지요. 어떻게 하냐 이거요. 나보러 이래요. 아 교수님이 나를 데려다 주면 어떻겠느냐? 학교까지 나를 데려다 달라는 거요.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 야 내가 파리에 여러번 갔는데 가서 보니까 갈때마다 가서 보니까 거기 거지들도 불어로 밥얻어 먹더라 아 그러고 칠득이 팔득이 병신들도 불어를 하더라 그리고 2살 3살짜리도 유창하게 불어를 하더라 니가 칠득이냐 팔득이냐 거지냐 2살 3살 먹었냐. 그나라 사람이 말하는 소리 한 4백마디만 흉내내면은 말 다 통하고 말 다 통하면 그다음 단계는 그다음 단계 저절로 된다. 자신감을 넣어주니가 눈이 반짝반짝 하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갈려고 하니 그런 자신감과 미래는 있지만 우선 당장에 공항에 덜어지면은 말이 통해야지 이게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도와줬어요. 야 문방구에 가서 카드사와라. 엽서만한 두툼한 종이가 있거든. 40 50장 갖고 왔거든. 공항에 내려서 가상해서 말을 쓰는 거요. 짐 찾는데가 어디입니까? 팩키지 찾는데가 어디입니까? 한글로 써 놓고 뒤에다 영어로 쓰고 또 공항에서 택시 타는데가 어디입니까? 쓰고, 영어로 쓰고, 또 학교를 어디로 갑니까> 그래 갔고는 한 30장을 카드로 만들었어요. 만들어 가지고, 너가 영어로 말한다고 해야 알아듣지도 못하니 한글보고 이렇게 뒤를 이렇게 보여라. 그만 불어로 뭐라고 뭐라고 손가락 가르치는데, 손가락 가르치는데만 가거라. 그렇게 해서 갔어요. 그렇게 해서 보냈어요. 저도 걱정이 되지만은 그러나 자신감을 갖고 갔어요. 얘가. 나도 해낸다. 아 교수님이 이스라엘 유학갔을 때 37살에 가셨는데 나 이제 나이 스물 몇살인데 내가 못하겠냐. 내가 그것을 넣어 줬거든. 가서 공부를 하는데 어떻게 열심히 하는지 아세요? 내 하라는 대로 했어요. 7개월만에 마스터하고 대학들어갔어요. 불어 한글자 몰랐던 애가 7개월만에 소르본느 대학에, 아니 소르본대학이 아니라 파리에 있는 제과제빵 학과에 유명한 대학이요. 5대대학중 에 하나요. 세계에. 학사편입을 해서 들어갔어요 공부를 하는데 내가 첫학기에는 여러 과목을 신청하지 말고 딱 두과목만 해라 그래야 가능하다. 그리고 성적을 잘 내 선생한테 좋은 인상을 주고 그다음에 도전해. 그대로 했어. 올A를 받더라구요. 1년후에는 학생회 회장을 하더라구요 프랑스 학생들을 휘어잡는거야. 왜 그런고 하니 얘는 졸업했고 졸업하고 학사편입 하고 다니니까 연령차이도 지능지수 차이도 있지요. 그러니까 학생회 회장을 하고 올 A를 맞은거야. 한 3년, 2년 반인가 얼마쯤 되니까 어느날 내 연구실에 개가 왔어. 가슴이 철렁해 엊그저께 편지 온 것이 성적표도 복사해서 보낸 것이 이놈이 가짜 되어갖고 이놈이 쫓겨나서 왔구나 이런 생각에 가슴이 철렁내리더라구. 야 너 언제 왔냐? 어제 저녁에 파리에서 비행기로 왔다 이거요. 어제 저녁에 왔다 이거요. 어떻게 왔냐? 아주 온게 아니고요 일시 귀국했어요. 공부끝나면 오지 왜 일시 귀국해서 왔냐? 내가 얼마나 놀랬냐? 그랬더니, 아 뭐 어쩌구 저쩌구 해서 다니러 왔다. 그래 그런거 뭐 조그마한 부스럭 부스럭해서 선물을 내는데 향수병하나 사와서 사모님 드리세요 하고 가더라구. 그 이튿날 딱 오더니 교수님 세계적인 제과제빵 대학을 졸업하면은 어디든지 취직한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너 성적도 좋고 그러니 이번에 온김에 취직이약을 좀 하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성격이 적극적이요. 그래서 그러면 좋지. 좀 알아봐 주세요. 그래. 아 그 이튿날 와서 알아보셨냐. 이거요. 아 그런데 내가 제과제빵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요 진짜 하나도 몰라요. 몰라서 알아보지도 못하고 막연하게 바쁘기도 하고 했는데 아 또 3번, 4번째 오더니 내가 며칠후에는 가야 한다 이거요. 가야되는데 세상에 한 번 인사도 못하고 가냐 이거요. 그거 생각하니까 난감하고 여러분 내입장이 되어서 제대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난감하더라구 어디 아는 사람도 없구. 제과제빵 아는 사람 어디 한사람 건너서도 알만한데도 없구. 그래서 그냥 야 전화번호부책 갖고와. 너 어느 회사에 가고 싶으냐? 어쨌든 내 모르니까는 기왕이면은 재벌, 재벌회사에 가고 싶어요. 제과 재벌 어디가 있는데? 롯데, 롯데 제과제빵이 재벌회사다. 좋다. 롯데제과제빵에 사장실 전화번호를 보자. 전화 걸어서 내가 전화한다고 바꿔라. 전화 탁 하더니, 류태영 교수님 연구실 인데요. 사장님하고 통화하고 싶다고. 비서가 물어쌌는가봐 생전알지도 못한 사람이 전화거니까 나중에 얘기하다가 나를 도로 바꿔줘. 내가 탁 받으니까 여비서가 뭐라고 하는가 하니 무슨일이신데요? 한번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오니까 무슨 일이신데요? 왜 그러신데요? 그러더라구. 그래서 교수가 사장님하고 통화하는데 꼭 비서한테다 얘기를 해야 되겠냐고. 당당하게 내가 뭐라고 해줬더니 얘기를 했더니 지금 사장님이 잠깐 나가시고 안계신다고. 아 그러면 진작부터 안계신다고 그러지. 1시간후에 들어오신다 이거야. 그러면 들어오시면 여쭈어가지고 나한테 전화좀 걸어라. 그리고 개 보고는 너 1시간 후에 와 돌아다니다가 와라. 1시간후에 왔어. 전화가 안와요. 10분을 기다려도 안와요. 그래서 또 걸었지. 벨소리 울립디다. 아가씨가 또 받더라구. 목소리를 알지요. 어떻게 되었는가. 그랬더니, 목소리가 어린 목소리에요. 아 지금 사장님이 금방 돌아오셨다구. 얼른 말씀 좀 드려봐요. 그랬더니, 바꿔주더라구요. 내 그 사장을 지금 얼굴도 모릅니다. 그런데 뭣을 일하더라구요. 예 제가 롯데제과 사장님입니다만 이래요. 생전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가 오니까 제가 사장입니다만 그래요. 그래서 제가 소개를 해서 내가 이러고 이런 사람인데 내 제자 중에 당신의 회사를 들어가고 싶다고 하기에 자격을 갖추어서 들어가라 그래서 프랑스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7개월만에 언어를 마스터하고 성적표도 올 A를 맞고 학생회 회장도 맡고 그 증명도 가지고 왔고 그러니 일시귀국해서 왔는데 얘 만나서 격려한번 해주십시오. 내가 그랬어요. 취직해 달라는 말도 안하고 그냥 그말만 했어요. 그런데 사장이 참 점잖하게 받더라구요. 저도 아들 딸이 있는데 교수님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전화를 거는 분이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그 학생을 면접해서 내 만나겠습니다. 한 시간후에 보내십시오. 그러더라구. 얘가 얼마나 좋아가지고 막 외국에서 공부한 애들은 예의가 좀 없어요. 궁둥이를 막 흔들고 막 이러니 인사하고 갈려고 해서 야 이리와. 너 프랑스 사회하고 한국사회하고는 다르다. 한국사회도 젊은애들 너희들 사이하고 사장, 우리들 나이하고 다르니 너 그렇게 가서 사람 인사하는게 아니다. 여기서 연습하자. 내가 사장이라 하고 저기서부터 들어와. 들어온 것부터 3번을 연습해요. 들어오면서 요렇게 요러고 들어오더라구요. 요즘 젊은애들 다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하는게 아니다. 공손하게 인사하고 내가 사장으로써 질문하고 대답하고 연습을 시켜가지고 보냈어요. 보내고 너 면담끝나면 전화해. 아 4시에 만났으니까 5시쯤에 전화가 올텐데 안와요. 전화가 6시까지 되어도 안와. 얘가 어떻게 되었는가? 퇴근할려고 문 잠그고 연구실 닫고 나갈려고 하니 그랬더니 전화 벨소리가 따르릉 울려서 문을 다시 따고 들어와서 받으니까 접니다 저요. 그래서 왜 전화가 늦어. 지금까지 회사에 있었어요. 내용인즉은 이러더라구요. 사장실에 갓는데 얘가 처음 간거에요. 교실만한 방에 사장 혼자 앉았더래. 이게 회의실도 물론 있고, 카페트가 깔렸고 걔 마음으로 그렇게 넓게 보인 모양이요. 으리으리한데 갔다 이거요. 갔더니 사장님이 한 10분 동안 이야기 하더니 바쁘시다고 전무이사를 불러가지고 전문하고 이야기 하라 그러고 사장님은 떠났습니다. 전무이사가 만나가지고 1시간을 얘기를 했대. 거기서 무엇을 배우냐? 제과제빵 유행이 무엇이냐? 재료는 무엇을 쓰느냐? 뭐 유행과 기계는 무엇을 쓰며 뭐하며 뭐하며 대답하고 대답하고 1시간을 대답하고 나니까 그 전무이사가 뭐라고 그러는가 하니 거 졸업하고 다른데 가지말고 우리 회사에 와 달라 그러드래요. 그러니 얘가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월급을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 내가 그말은 해줬어요. 월급 많이 달라고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더니 시킨대로 했어요.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이 회사가 아주 재벌회사인데 어련히 사람을 알아서 거기에 알맞게 줄줄 압니다. 그러니 주는 대로 받겠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말을 이쁘게 잘하느냐고 그러더래요. 그러니 인사하고 갈라고 하다가 내가 시키지 않은 말을 얘가 하나 한게 있어요. 전무님 무슨 끄나풀이 하나 있으면 좋겠네요. 그랬데요. 끄나풀이라니? 아 내가 졸업을 하고 마음이 변해서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있고, 내가 졸업한 뒤에 오면은 전무님이 또 갈려가지고 다른데로 가버릴 수도 있고 그러면 지금 약속이 다 어디로 날려 가버린다 이거요. 그러니 이게 결혼식할 때 약혼식하듯이 무슨 끄나풀이 좀 있으면 좋겠다 이래요. 그러니 전문가 맞다 이거요 맞다 그러면서 조금 있으라고 누굴 불르고 전화로 소곤소곤 하고 또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더니 한 30분 기다렸더니 800만원 현찰을 딱 갖고와 이것을 장학금으로 줄테니, 지금으로부터 8개월 남았대요 졸업할때까지가. 8개월동안 생활비하며 왕복비행기표 이사비하며 요놈 주면 되겠느냐? 감사합니다. 지금 내손에 800만원이 있습니다. 그러고 갔어요. 파리에 가서 졸업을 하고 왔어요. 와서 이놈이 근무하는데 가끔 이놈이 저한테와요. 아 교수님 세상에 이렇게 보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그랬더니 맨날 사장실에 산데요. 걸핏하면 사장이 부른데요. 왜 사장이 불러? 그랬더니 프랑스에서 손님이 오면은 이사람 불러서 통역을 해야되니까 불러. 프랑스에서 편지가 오면은 얘를 불러. 프랑스에서 기계가 들어오면은 얘를 불러. 기계 주문할려면 얘를 불러. 프랑스 출장을 갈려면 얘를 불러. 아 그러니 사원들도 들어온 놈이 언제 안된 것이 과장님이 사장님 만날려 해도 힘드는데 이거 맨날간대 맨날. 그래서 내가 그때 한마디 더해줬어요. 바로 얼마전입니다. 너 커서 제과제빵 회사의 큰 회사에 사장 될 사람이다. 그랬더니 아이고 제 마음을 어떻게 아세요? 내가 다 알아.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나라 굴지의 제과제빵 사장이 되겠다 이거요 마음이 가득찼어요. 너 사장이 될려면은 말단 사원에서 서무과고 서무구고 심사과고 자세히 들여다봐라. 사장이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회사에 근무하는 것하고 그렇지 않은 것하고 다르다. 그랬더니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심지어 경비원 일하는 자세까지 잘봐요. 여러분 회사에 근무할 때 어떤 자세로 근무합니까? 그냥 어쩌구 하다가 여기서 모가지나 안 떨어지고 월급이나 더 받고 좀 있다가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요 얼마안해서 이 집단에서 소외됩니다. 자기가 견디지 못해서 물러나든지 회사에서 밀어내든지 반드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세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 안된다 불가능하다 없다 이런 소리만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창출하는 아이디어로 해결할려고 그러고 내가 사장아들이다. 사장아들이면은 이거 창립자 아들이다. 창립자아들이면 이 회사를 앞으로 경영하는 마음 자세로 회사에 있게 되면은 자기태도가 달라져요. 내 부총장, 학교에 부총장 할 때 부총장은 회사의 전무같아요. 모든 우리대학 예산이 1년에 한 천억 됩니다. 전부 지출결재 총장님은 웬만한건 부총장한테 넘겨놨거든 부총장 총 책임이야. 그래서 이제 행정을 하고 뭐 여러 가지 하는데 한 번은 학교에는 직급이 이래요. 행정직이 처장이 제일 높고 그다음 부처장, 과장, 주임 그다음 서기, 서기 뭐 담당 나가요. 그래서 업무를 전부 담당제로 하는 식으로 떠 넘겼지요. 한 번은 주임도 아닌 서기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해가지고 이게 A4 용지에 7페이지를 보고서로 써 냈다구. 행정개혁안을 냈어요. 아 깜짝 놀랬어요. 보니까는 실무자의 입장에서 본 개혁안이요. 자기가 볼 때 어느과 어느과 어느과는 사람이 다섯있는데 세명만 있어도 되고 어느과에는 유능한 사람 두명만 있어도 되고 그다음 업무를 책상을 요렇게 배치하고 요렇게 배치하고 업무를 어떻게 어떻게 분담하고 능률있게 자세히 썼어요. 무론 그게 백프로 맞는건 아니에요. 일부는 맞고 일부는 좀 잘못 본것도 있고 그래요. 이해를 못한것도 있고 그 내 총장님께 보고 드려서 표창을 하고 특진을 시켜줬습니다만은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말이요. 여러분 교보생명에서 그렇게 하십니까? 일선, 영업소에 가서 보시면은 본부에 앉아서 사장님이나 전무님이나 중역들도 영업소를 거친 분도 계시고 안거친 분도 계시고 또 잘 아시는 분도 계시고 안 계시는 분도 계세요. 또 시대에 따라 달라. 그럼 그때그때 현장에서 생각날때마다 수첩에다 메모를 해요. 아예 요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사장시찰 했을 때 이렇게 했으면 좋을텐데. 그것을 한 2,3달 모아 두면은요 한 보고서가 됩니다. 그리고 개혁안을 내세요. 그러면 회장님이나 사장님이나 전무가 그것을 쓰레기통에다 넣는 수도 있어요. 넣었더래도 그 사람은 발전했어요. 쓰레기통에다 넣었더래도 한 번 썼다는 자체가 엄청난 발전을 가져 온거에요. 그사람한테 받아주었다 하면은 더 말할 것 없고 그런 생활 쓰레기통에다 넣는 한이 있더래도 또 하는 거요. 계속 그 수첩에다 도 써봐요. 그 사람은 발전합니다. 확실히 달라집니다. 5년, 10년 후에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과 그 사람과는 자연적으로 구별되어버립니다. 자연적으로 구별돼. 그런 긍정적인 삶, 자신감을 가지고 사는 삶, 그것을 신념으로 가지는 삶, 거기에 용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속에서 불가능이라는 담이 허물어집니다. 길이 열립니다. 절벽에 깜깜하게 막힌 절벽에 구멍이 뚫립니다. 암흑에서 빛이 드리워집니다. 이 막연한 철학이 아닙니다. 경험을 해보세요. 마음에 자기 마음에 움직임을 보세요. 마음의 창문은 뭣인지 아세요? 눈입니다. 오늘 저녁이든지 어느 조용할 때 거울을 뚫어져라고 쳐다보세요. 난 여러번 해봤어요. 자기 눈빛을 똑 뜨고 한참 쳐다보세요. 마음이 들여다 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마음속에 구렁이가 득실거리는지, 비둘기가 있는지, 똥이 있는지, 금강석이 있는지, 자기는 압니다. 내면을 응시해보세요. 응시하는 가운데 자기 내면을 깨끗이 하세요. 미래에 대한 등불을 켜세요. 이러한 자세속에서 긍정적인 삶을 가지세요. 이렇게 해서 일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건국대학교 졸업하고 내가 지도를 해서 하버드대학 의과대학에 가서 교수하는 애 있어요. 지금 스텐포드에 가 있는 애도 있구. 하버드대학 의과대학에서 가르치는 애가 편지가 와서 교수님만 안만났더라면 내가 어떻게 미국 하버드대학의 의과대학 학생들을 가르치냐 이거요. 하바드대학의 세계적인 학자들과 함께 나란히 공동 연구논문이 나가고 어떻게 그럴수 있었느냐 이거요. 그 사람한테 준 선물은 내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오늘 여러분한테 드리는 선물과 똑같은 거에요. 긍정적인 삶, 미래지향적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가슴속에 등불을 켜고 할 수 있다는 신념속에서 그냥 나가는 겁니다. 어느 문제 해결됩니다. 돈문제 해결됩니다. 인물문제 걱정마세요. 키가 작고 크고 남자고 여자고 집안이 못났고 잘났고 학벌이 잘나고 못나고 그건 다 과거에요. 과거의 늪속에 과거의 쇠사슬속에 자기가 엉켜가지고 꼼짝을 못하는 그러한 속에서 해방이 되시라구요. 그 해방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거에요. 마음, 자기마음 자기 움직이는거 자유입니다. 혼자 자기 생각이 앞으로 내 유엔사무총장된다. 마음 먹었는데 누가 와서 너 왜 그런 마음 먹냐? 누가 그래요? 없어요. 마음 다 먹으라구 마음먹는데 표현만 안해보세요. 세계에 대형 백과사전이라고 엔사이클로피디아 브리테리컬이라고 하는 그 책을 파는 세일즈왕이 한 십여년전에 한국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영어로 된 책을 그때는 한 5년전인데 영어로 된 책을, 한질에 이백만원 삼백만원 되는거 아닙니까? 그걸 세계각국의 세일즈맨들이 파는데 제일 많이 판 사람이 한국사람이요 윤 뭐시라고 하는 사람. 그래갔구는 챔피언 벨트를 영국에 초정되어서 받았다구. 그 사람한테 물었어. 내가 직접 물은게 아니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안병우 교수가 그 사람하고 친해서 안병우 교수가 같이 어딜 둘이 강의를 갔는데 호텔에서 같은 방에서 자는 가운데 물었대요. 안병우 교수가 저한테 전하는 말이에요. 뭐라고 하는가 하니, 어떻게 해서 챔피언 벨트를 받았냐? 내가 어떤 한이 있더래도 내 이책을 팔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은 팔았다는 거에요. 그중에 가장 어려운 예를 하나드는데, 어떤 조그마한 중소기업회사 사장을 찾아갔대요. 찾아가서 맨처음에 사장님하고 책사라고 안하고 이회사의 비서실을 하나 잘 꾸미지요? 어떤놈이 와서 느닷없이 비서실을 잘 꾸미라고 하니까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니까 이게 대형백과사전은 모든 두뇌의 지혜가 이속에 다 들어있다. 한질을 사라 그얘기죠 요점은. 사장이 첫마디, 어 잘못왔다고 지금 보지 안느냐고 도깨비시장같이 바쁘고 막 이러고 있는데 언제 책을 보냐? 그것은 도서관이나 선생이나 교수한테 가 팔으라고 탈탈탈 터는 거에요. 실제로 막 그러잖아요. 중소기업 조그만 회사 사장은 혼자 집사부터 사장까지 다 하잖아요. 대게 비서 전화받는 여비서 하나있고 사장실이 도깨비시장같이 그래. 그런데 조금 큰 중소기업이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이 니가 안사는가, 내가 못파는가 어디 보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예의를 갖추어서 웃는 표정으로 비관하는 마음이 없어요. 또가서 설득하고 또가서 설득하는데 몇번을 갔냐했더니, 오십번을 갔대요. 삼십번이 넘으니까 경비실에다 연락해서 경비실에서 못들어오게 하더래요. 아예 이제 경비실하고 싸우는 거야. 주먹쥐고 싸우는게 아니야. 설득하는 거에요. 내가 이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왔지 내가 뭐 동정받을려고 온거냐. 몰라서 그러지 경비실에서 싸우다 싸우다 지쳐가지고 그냥 모른척하고 놓아주는 거에요. 들어가니까 나중에 오십번째 갔을 때는 문을 탁 여니까 끝허리가 끼자가 붙더래요. 그전에도 그러지만은 이놈의 새끼 영업방해를 한다고 말이야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이야. 요 허도 거머리도 이런 거머리는 처음 봤다 이거에요. 그러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 잠깐 들어오라고 저 사람이 날 오라더니 칼로 찌를라고 부르는가 꾸벅꾸벅해서 들어갔더니 진짜 비서시켜서 담배를 권하더니, 차한잔 가져와라 커리한잔 가져오라. 커피를 권하더니 담배를 푹푹 피우다가 우리 회사에 당신같은 사람 몇사람만 있으면 좋겠다고 첫마디 그말을 하더래요. 그러면서 당신네 책 사주겠다고. 총무과장을 부르더니 일시금으로 제출해라. 삼백만원을 그렇게 해서 팔았대요. 그게 한건입니다. 여러분 세상 살아나가는 것이 쉽습니까? 나는 보험설계사들을 만납니다. 설계사가 뭡니까? 인생을 설계한다는거 아닙니까? 자기 생명, 생명에 대해서 설계하는 거야. 그래서 사망보험도 있고 생명보험도 있고 교육보험도 있고 거기에 생명보험에 관한 여러 가지 있는 것은 그것을 설계하겠다는 거야. 내가 상대방의 인생생활을 설계해주는 거요. 이렇게 이렇게 넣으면 노후에 무엇을 보장받고 이렇게하면 병들었을 때 뭐하게 되고 이거 설계해주는 것 아닙니까? 남을 설계하지 말고 먼저 자기를 설계해야 돼. 자기자신을 콘트롤해. self-control 하는 자기자신을 설계하고, 자기자신을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을때에는 남을 설계안됩니다. 나는 우리 제자들 어디 세일즈맨으로 취직했을 때 그럽니다. 내 개인적으로 왔을 때 이 얘기를 해요. 너 절대 동정적으로 물건 사달라 동정적으로 보험에 들어달라 그러면 그것은 작다. 곧 실적따라가 친구따라가 아는 사람한테 팔기 시작하는 사람은 곧 끊어져 버려요. 절대 모르는 사람한테 시작해라. 니가 진짜 세일즈맨 될려면 아는 사람한테 찾아가 내가 여기 들어갔는데 이거 하나 갈아주세요. 하나 사주세요. 내얼굴보고 하나 사주세요. 요렇게 구걸하는 것은 한 이십번하면 끝이야 그다음에. 처음부터 하는데 애걸하지 말아라 이거 하나 사주시오 하지 말아라 상대방에게 설득을 해서 필요성을 인정시켜라. 이게 보험설계사의 가장 핵심입니다. 그런 사람은 살아남습니다. 애걸하고 사정하는 사람은 곧 끊어져버려. 그 영역이 끊어져 버려. 자기 영토 금방 끝나버려. 내 유대인 세일즈맨회사에 취직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내 취직을 시켰는데 그 친구가 미스터 한인데 제분기를 수입해다 팔아요. 단위가 커요. 그래서 삼성제분 삼성계열에 들어가서 기계를 파는데 한 십억짜리 물건인데 아 과장한테 설정하고 도대체 안되더래요. 그래서 사달라고 사달라고 하는데 자기의 보스인 유대인 내가 잘아는 친구 기아스꼬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한테 얘기했더니 가자 나하고 함게 가자 그러더래요. 그래서 갔더니 그사람이 가서 이십분을 얘기하니까 자기가 말한 것보다 돈을 더주고 사더래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하고 가만히 얘기하는 내용을 리마인드해서 나한테 전한 말에 의면은 내가 이제분기를 취급하는데 이거 하나 사주시오. 이렇게 접근을 안하더래. 당신이 이 제분기를 씀으로 인해서 당신의 회사에 얼마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쫙 풀어줘. 상대방의 입장에서 당신 회사가 이 제분기를 삼으로 인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익이 되고 이렇게 이렇게 있다 조금 싼 것이 있지만 그것 샀을때는 이것을 합리적으로 쭉 설명하니까, 고거 사겠습니다. 비싼 것으로 사겠습니다. 비싼게 사면 서비스가 그만큼 더 있고 조금 싸면 서비스를 좀 깎으록 그런게 있대요. 자기가 말한 것보다 돈을 더주고 당장에 계약을 하더래요. 이게 세일즈맨의 기본 철학입니다. 그러면서 그 유대인이 돌아오면서 이러더래요. 너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얘기하는 소리 들었지 않느냐? 상대방에 가서 애걸하거나 백쓰거나 수를 받아주거나 이렇게해서 하는 것은 오래 못간다. 물론 방법중에 그런 것도 더러 있을 수 있지만은 근본적으로 대부분은 상대방을 설득해서 이것을 이 상품을 삼으로 인해서 일생에 얼마나 좋고 얼마나 유리하다는 것을 실감가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설명할려면 그말이 가슴에서 우러나야돼요. 머리속에서 책을 보고 입으로만 깔랑깔랑 하면은 저 장사꾼 말 잘한다. 그러고 끝나버린다구. 그럴려면은 내가 마음에 먼저 마음에 내가 무장을 해야돼. 마음에 있는 소리를 상대방의 마음에 얘기해야 전달이 됩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로는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서 말 잘한다고 끝 그래요. 가슴에서 나오는 말은 가슴에 상대방의 가슴을 울립니다. 상대방을 움직입니다. 가슴에서 나올려면은 자기가 그런 철학속에서 살아야되고 자기가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되고 생활화되어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예를 들겠습니다. 유명한 경제학 노벨수상자인 갈브레이드씨가 선진국과 후진국에 관한 얘기를 하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아프리카의 미개한 나라에 방문을 했습니다. 먼데다가 큰배를 대놓고 작은 보트로 해서 상륙을 해서 보니까 여러 가지 기이한 현상과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는데 어린애들이 나무그늘에 앉아서 공기줍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공기돌을 가만히 보니까 전부 다이아몬드라는 얘기입니다. 다이아몬드가 공기돌만하면은 값이 얼마쯤 될까요? 아마 못가더라도 한 2억은 갈겁니다. 여기저기서 2억원짜리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러는 거에요. 여기서 한 두알만 가지고 집에가도 부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꾹참고 모선으로 가서 조그마한 깡통을 가져왔습니다. 그 깡통속에는 눈깔사탕이 가득 들어있는 거지요. 애들앞에서 깡통을 열고 그 눈깔사탕을 먼저 자기 입에다 하나 넣고 애들 입에다 넣어 준겁니다. 애들이 볼 때 공기돌같이 조그마한 단단한 돌은 돌인데 입속에 들어가서 혓바닥을 요동치고 막 달고 환하고 향료에다가 당뇨에다가 이게 야단났단 말이에요. 그러니 애들이 뛰어가서 집으로 가서 엄마 엄마 이것 좀 보라고 자기 입에서 내서 엄마 입에다 넣어주니까 엄마 눈이 둥글둥글 하다가 또 그걸 아빠 입에다 넣어주고 아빠입에서 다시 동생 오빠 다 한바퀴 도는 거에요. 세상에 이런 희한한 조화가 어디 있냐 이거에요. 누가 주더냐? 아 저기 흐물떡한 사람들이 와서 준다. 전부 모여드는 거에요. 모여드니까 전부 무상원조 거저 주는 거에요. 그냥 거저 나눠줘. 전부 사람들이 와서 그저 그거 하나 얻어 먹을려고 고개를 빼밀고 그냥 모여있는 거에요. 그 사람들한테 다 하나씩 줬지요. 한 이틀동안 맛을 들인 뒤에는 그다음에는 깡통을 뒤에다 가리우고 지금부터는 사먹으라 이겁니다. 무상원조 끝 유상원조라 이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지요. 그러니까 인자한 아저씨인척 하면서 이사람들이 내밀은 것이 뭣이냐? 너희들이 가지고 노는 공기돌하고 바꾸어 먹자. 애들은 쌍손을 들고 환영이에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아마 옆에 있었으면 그랬을 거에요. 얘들아 그 공기돌 하나만 팔면은 이 눈깔사탕을 두트럭을 산다 두 트럭. 그런데 세상에 십원짜리하고 2억원짜리하고 맞바꾸어 먹냐. 아마 그랬을 겁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아주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엇이냐. 내가 그 아이하고 다른 것이 무엇이냐 이겁니다.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가치, 해낼수 있는 능력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한다면은 아프리카 흑인아이들이 2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십원짜리 하고 바꾸어 먹고 좋다고 날날 거리는 사람이나 다를바가 어디있냐 말입니다. 노래방이나 가고 친구들하고 만나서 어디가서 고스돕이나 한판하고 어떻게 하면 피부나 즐겁게 하고 혓바닥이나 달콤하게 하는 일이 없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그런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였다면은 무한대 가능성을 가지고 해낼 수 있는 능력과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피부나 즐겁게 하는 그런 사탕과 맞바꾸어 먹는 일이 얼마나 있는가 말입니다. 오늘 여기에 오신 교보가족 여러분! 여기 한분 한분이 엄청난 능력과 자격과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단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지난번 창립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막을 제거한다든지 육만을 퇴치한다든지 이런 것은 지협적인 조그만 일이에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런 가슴에다 등불을 키고 이렇게 나간다고 한다면은 이런 것은 쉽게 해결이 되고 불가능 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미래지향적인 자신감이 있는 교보가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오늘 저녁을 계기로 해서 어떤 일생일대에 큰 결단을 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지기를 바라면서 오늘 말씀 마칩니다.
* 최종수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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